독서모임 10번째 책으로 드디어 읽게 된 '모순'
많은 사람들이 인생책으로 꼽는 책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하면서 읽었고 이제는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예약이 꽉 차 있어 빌리기가 힘든, 아주 인기 있는 책이라 구매했는데 소장가치가 충분하다.
작가의 글빨이 미쳤다는 게 읽으면서 느껴졌던 책이다.
<모순>
-저자:양귀자
[리뷰] 스포 있음!
나는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면 김장우를 생각한다.
오늘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에는, 거리를 내달렸던 안진진과 이모를 떠올릴 것이다.
20대 중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삶의 주인공 안진진은 삶의 터닝포인트로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안진진이 고민 중인 남자는 2명으로, 한 명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남자 나영규다.
또 다른 한 명은 그와 정반대인,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가진 것과 정해진 미래라곤 없는 남자 김장우다.
나영규는 모든 것이 안정적이지만 김장우는 마음이 가는 무엇인가 있다.
김장우는 낭만이 있지만 나영규는 안진진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
나도 슬슬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 20대 후반이기에 안진진의 선택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안진진이 분명 김장우를 더 사랑했지만 결국 나영규를 선택한 것은 책 제목 그대로 '모순'이다.
또 안진진의 모순은 두 남자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나영규에게는 자신의 어려운 집안사정과 부모님의 문제 등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는다.
하지만 김장우에게는 멋진 이모를 엄마라고 속이며 자신을 꾸며낸다.
왜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솔직하지 못할까? 상대가 나를 더 좋게 봤으면 하고 자신을 포장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내 진짜 모습을 더 감추게 만드는 것 같다는 점에서 큰 공감이 되었다.
이모의 삶과 엄마의 삶 또한 모순이다.
안진진에게는 똑같이 생긴 엄마와 이모가 있다. 둘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다.
동시에 태어나 똑같이 생겼지만, 엄마는 가난하고 도박쟁이에 술주정뱅이로 집을 떠나 떠도는 남편과 결혼했고 이모는 몸과 마음이 안정적인 부자 남편과 결혼했다.
엄마는 그런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아들 딸이 항상 곁에 있었고, 힘든 가정환경에 따라 생활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모는 그런 남편 덕에 안정적이고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안정적인 남편은 재미가 없었고 아들 딸 또한 유학 길에 올라 이모 곁에 없었다.
가진 것 없는 엄마는 항상 바쁘고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 심심하지도 외롭지도 않았지만, 가진 것이 많은 이모는 오히려 더 심심하고 외로웠다.
안진진은 이모를 많이 사랑했다. 쌍둥이기에 엄마와 이모가 생일이 같은데도 이모에게만 꽃을 선물한다든지, 학부모 초청 수업에 이모를 불러 엄마 행세를 시킨다든지, 우연히 마주친 남자친구에게 이모를 엄마로 소개한다든지. 이러한 모습을 보면 안진진은 엄마보다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싶었던 것 같다.
아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이모는 안진진에게, 진진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왜 그것이 미안할까? 조카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데 미안해했다.
곁에 있어주고 자신을 더 사랑해 주는 사람(안진진) 보다 멀리 떨어져 소원한 사람들(자기 자식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모순으로 느껴져 미안했을까?
안진진은 이모의 자식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안온하게 살아와 어려움이란 모르는 채 재미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모가 죽고 나서는 이제 그들이 어려움을 하나 겪었으니 성장할 일이 생겼다고 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죽어도 모른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을 겪어야 한다고 한다.
안진진의 이러한 가치관이 나영규를 선택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김장우는 진진의 아빠와 같다.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직업에 미래가 불투명하므로 김장우를 선택했다면 자신은 엄마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나영규는 이모부와 같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나와 함께 할 미래를 정확하게 그릴 수 있다.
이모가 죽고 나서, 안진진은 결국 나영규를 선택했다.
김장우를 더 사랑한다는 자신의 진심을 외면한 채 안진진은 나영규를 남편으로 골랐다.
나영규를 선택하는 것은 이모의 삶을 선택한 것으로써, 자신이 평생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엄마의 삶 대신에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모의 삶을 살아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 끝이 이모와 같은 불구덩이더라도, 불길로 뛰어드는 것이 안진진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였어도 현실적으로 나영규를 선택했을 것 같다. 나영규는 짜인 대로 살아가느라 좀 재미없긴 하지만 안정적인 생활과 명확한 사랑, 미래를 모두 다 줄 수 있으니까. 김장우는 정말 사랑 말곤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실 읽으면서 하나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안진진이 술주정뱅이+도박쟁이+폭력남편인 아버지를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런 아빠라 우리 가족을, 엄마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기에 용서할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1998년에 쓰였으나 지금도 인기가 있는 책이다. 읽고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래전에 쓰였지만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것 빼고는) 딱히 없다.
이야기가 끝난 뒤 작가의 말까지도 다 감명 깊게 읽었다.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은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모순' 이 책은 다시 읽어 볼 나의 인생책이 되었다.
사람은 다 모순 덩어리인 채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을 살아간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