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기

by 허김

우리 아빠는 내 독서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아빠는 아직도 책을 엄청나게 읽으시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작년 아빠 생일 선물로 일본 역사소설책인 '대망'시리즈를 20권을 넘게 사드렸다.

나뿐만 아니라 아줌마의 딸(현재 아빠 여자친구의 딸)에게서도 책을 10권 넘게 선물 받아

이제는 비어버린 동생 방에 한동안 틀어박혀 책만 읽어대 데이트는 하지도 않는다며 아줌마가 서운해할 정도였다.


지금도 많은 책을 읽지만, 내가 어렸을 때도 아빠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안방에서 이어진 아빠의 서재로 들어가면 아직도 벽 한 면 가득 책이 빽빽이 꽂혀있다.

지금도 아빠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우선 책부터 사고 본다.

공부도 책도 좋아하는 아빠가 매일 친구들이랑 나가 놀 생각만 하는 나와 동생을 보니 얼마나 갑갑했을까?

아빠는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내게 책 읽는 힘을 길러주려 노력했었다.

어떤 방식이었냐 하면, 바로 확실한 '보상'이었다.

내게 청소년 토지 14권 시리즈를 사주고 한 권씩 다 읽을 때마다 만 원을 준다고 했다.

중1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 용돈은 1주일에 만 원으로, 한 달에 4만 원이었다.

당시 친구들과 노래방도 가고, 치마도 줄이고, 토마토 선크림과 샤이니 BB도 사 발라야 했던 나는 이 제안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당연히 열심히 책을 읽었다.


빨리 읽어 빨리 용돈을 버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때 잘못된 책 읽기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사촌언니가 가르쳐 준 '속독'이다. 언니가 알려준 속독의 방법은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사선으로 빠르게 읽어나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이때 사촌언니에게 배운 방법으로 속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나쁜 습관으로 인해 내용을 오래,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어 두세 번을 다시 읽어야 했다.

지금도 가끔 습관적으로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훑으려 하지만 그래도 금방 정신을 번쩍 차려 천천히 꼼꼼히 읽으려 노력한다.

여하튼 나는 이때 속독의 방법을 터득해 빨리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토지 시리즈 외에도 아빠가 읽으라고 미션으로 내 준 책을 다 읽어 결국 아빠가 원하던 대로 장편소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책을 읽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태백산맥 시리즈 10권을 읽었는데 이때는 사실 공부 외에 모든 것이 재미있을 때라 괜히 아빠 서재에 있던 장편 소설 태백산맥을 꺼내 읽기 시작했었다.

태백산맥 2권을 읽고 있던 당시, 내 자리는 교탁 바로 앞자리였는데 수업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태백산맥 2권을 보시고 '너 태백산맥을 읽는구나? 대단하다'라며 내게 관심을 가져줬다.

이 관심이 동력이 되어 나는 독서를 멈출 수 없었고 선생님들, 특히 국어 선생님들이 보실 수 있도록 꼭 책상 위에 잘 보이게 책을 두었다.

점점 5,6,,10권까지 달려갈수록 많은 선생님들의 응원을 받았고 결국 태백산맥 시리즈 모든 책을 다 읽어냈다. 이후에도 조정래의 다른 장편소설인 '아리랑'에 도전했었다.


우리 아빠는 이런 장편소설을 읽는 나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는데, 사실 아빠는 금전적인 보상 외에도 집안 분위기를 책 읽는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당시 같이 살던 새엄마(친엄마가 아닌 아빠의 전 부인)와 아빠는 주말 아침이면 항상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고 꼭 거실에 앉아 같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자신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고 같이 읽었으면 해서 했던 노력이었다.

하지만 나는 중2병과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심하게 거치고, 누구나 그렇듯 수험생활을 지나면서 책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다 대학생 때 다시 독서에 맛을 들리기 시작했는데, 1학년 가을학기 종강 이후 긴 겨울에 나는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하지 않고 매일 빈둥대며 놀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대학교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다는 것이다. 할 것도 없던 차에 '나도 오랜만에 책이나 읽어볼까?'하고 따라가 책을 고르려 하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랐다.

오래도록 고민만 하고 있으니, 친구가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책을 추천해 주었다.

당장 그 책을 빌려다 읽었고, 이후에 나는 우리 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찾게 되었다.

또 나는 당시 독서를 하는 나에 꽤나 심취해 있었는데, 내가 읽은 많은 책들이 영화화가 됐었다.

어떤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앗, 나는 그 영화의 원작을 이미 읽었어'라는 식으로 은근히 독서를 하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이후로 취준과 여러 불안정한 시기를 거치면서 다시 책을 놓았지만 최근 다시 독서모임을 통해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사람이 다 똑똑해지고 당장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를 통해 다시금 깨닫고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바로 '나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공감과 이해,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은 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나를 돌아보고, 내가 자주 드는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면 나의 생각과 순간순간의 선택들은 내면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장르든, 어떤 주제의 책을 읽든 '가족'과 '부모의 사랑'등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고 내 결핍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독서가 좋다. 누군가는 패션독서라며 나를 놀리기도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가 좋다.

계속해서 읽다 보면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세상에 대해 더 잘 알고, 그러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더 넓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계속 읽고, 생각하고,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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