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빛날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뱃속에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 순간부터였다.
화장을 줄이고 기초 화장품만 바르게 되었고, 염색도 신경 쓰여 하지 않게 되었으며, 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화학물질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 두려워 그때부터 미용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먹는 것, 입는 것, 바르는 것 하나하나 모두 아이에게 맞춰지게 된다.
아이 손이 닿는 곳의 촉감이 신경 쓰여 부드러운 옷만 입게 되고,
토하거나 묻힐 수 있으니 좋은 옷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이가 성장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르면서,
20대의 예쁜 아가씨에서 어느새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40대가 되면서 점점 거울을 보기 싫어졌다.
피부는 엉망이 되고, 운동 부족으로 몸은 무겁고 둔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길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예뻤을까, 얼마나 생기발랄했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의 모습이 참 예뻤다.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이다가, 이제는 현재의 모습 자체가 너무나 예쁘고 빛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장바구니를 든 그 모습들이, 바로 그녀들의 빛나는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다시 거울을 보게 되었다.
매일 찡그린 표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으며,
잠자는 동안에도 찡그린 얼굴이었는지 어느새 콧잔등에 주름이 깊게 자리 잡았다.
뭐가 그렇게 힘들고 화가 났던 걸까.
아이들은 늘 엄마가 화가 나 있다고 느꼈을 텐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대한 인터뷰를 보았다.
“일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
윗사람 비위를 맞추고 돌아와야 하는 현실 때문에,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은 누가 했나요?”라는 질문에 아이는 대답했다.
“엄마요.”
빛나는 미래가 아닌,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 같은 두려움을 심어주는 현실.
과연 이게 맞을까 싶었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찡그린 얼굴로, 아이에게 어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던 건 아닐까.
엄마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행복했다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힘든 일도 있지만, 그것 또한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도 행복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조차 즐겨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