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무엇인가

by 이민경

나에게 학교란 무엇이었을까. 대안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서울을 떠난 뒤 나는 줄곧 학교가 무엇인지, 또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6살에 다른 아이들보다 한살 이른나이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천주교를 믿지는 않았지만 성당에서 운영하는 성심유치원에서 한 해를 재미있게 지냈다.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들을 만났고 선생님들께 사랑받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은 오롯이 공교육에서 모두가 그러하듯 나도 그들처럼 지냈다. 60명의 아이들이 우글거리는 학교 속에서 기억나는 선생님은 몇분 있는데 그것이 좋은 기억이라기보다는 불쾌한 기분이었다. 조용한 아이여서 선생님의 눈에 띌 일이 없었지만 가끔 공상에 빠져 선생님 지시를 못듣고 멍때리다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출석부로 머리를 맞은 기억, 땡볕에서 전국체전 매스게임 연습을 했던 기억, 시험점수 별로 손바닥 맞은 기억,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너무 길어서 종종 쓰러지는 아이들이 있었고 학교 생활이란 수업, 숙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축약된다. 돌아보니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시절 내가 가장 행복했던 공간은 무용학원이었다.

중학교는 사춘기와 함께 다가왔다. 학업이란 이유로 무용학원 다니는 일을 접어야 했다. 종종 애잔한 감정에 휩싸였고 그 도시에 3개 밖에 없는 인문계여고를 가야했기에 중3 때는 고3처럼 공부했다. 지금처럼 학원이 있던 것도 아니기에 야간자율학습을 모두 10시 넘어까지 하며 선생님들의 통제를 받았다. 모두 그렇게 사니 나도 그냥 살았다. 기억에 남는 건 수업시간마다 화집을 들고 오셔서 명화를 보여주셨던 미술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은 실기평가도 이름을 쓰지 않은 그림을 앞에 쫙 깔아놓고 모두 함께 그림에 대해 얘기 나누며 평가를 함께 하도록 하셨다. 나는 멋진 작품들을 볼 수 있고 화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에 중학교 시절 오아시스처럼 기억된다. 그리고 선생님의 평가방식을 나도 종종 아이들과 수업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 때 알게 된 지병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다.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학교에서도 아픈 아이라고 특별대우, 열외취급 받는 것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는 정말 명랑하게 살려고 이미지 변신을 했다. 커트머리에 동글동글한 외모가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의 고등학교여서 수녀선생님과 신부님도 계셨다. 나는 종교가 없었지만 학교에서 드리는 미사가 좋았고 괴짜 수녀님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모든 수업은 학력고사에 맞춰져 있었고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체벌을 당했다. 특히 킬러로 알려지신 영어K선생님이시자 나의 고2 담임선생님은 무시무시하셨다. 나는 영어를 좋아하고 독해실력도 좋았지만 학교 영어수업시간은 공포로 기억한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은 무조건 암기검사부터 하신다. 단어를 바로바로 답하지 못하면 팔뚝을 북채로 맞았다. 우리는 성문기본영어와 종합영어로 공부를 했는데 무조건 그곳에 나오는 문장을 외워야 했다. 그때 외웠던 단어나 문장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문이 드르륵 열리면 작고 마른 영어K선생님이 보라색 옷을 입고 들어오셔서 눈마주친 자부터 “너! 다음 너!”하면 외치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나도 모르게 책상까지 덜덜덜 떨렸던 그 시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선생님이 그렇게 수업해주셔서 과연 내가 원하던 서울행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게 공포스럽게 우리를 몰아치지 않으셨어도 나는 고3 때 스스로의 열망으로 열심히 공부했을 거 같은데..

고등학교 시절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 일요일이다. 아무도 없는 학교에 공부하러 오면 학교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평일엔 안들리던 새소리도 들리고, 작은 연못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과 바람소리도 가슴을 설레게 했다. 엄마가 두개씩 싸주시던 도시락 대신 학교 앞 분식점에서 먹는 점심도 행복지수를 높여주었다. 졸업한지 20년도 더 지나 나는 성지여자고등학교에 다시 가보았다. 방학이라 사람은 없었는데 이유없는 그리움에 사무쳤다. 엉덩이에 땀띠나게 공부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선생님 흉내도 내고,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하기도 했던 그 공간이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학력고사를 보고 대학에 합격한 후 공부했던 모든 책들을 다 찢어 버렸다. 정말 징글징글했다. 중학교 졸업식은 갔는데 고등학교 졸업식은 간 기억도 없다. 나에게 학교란 그런 곳이었나보다.


돌이켜보니 학교란 그저 그 시절 그 곳에서 같이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가장 깊숙히 남는 곳인 거 같다. 사랑받은 기억, 우정을 나눈 기억, 그리고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경험이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자기 삶에 흔적으로 남는 것 말이다. 으리으리한 건물과 멋드러진 커리큘럼, 학력이 좋은 교사들이 많은, 남들이 말하는 명문학교가 아니라 각자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잘 맞는 학교에 가서, 의미있는 몇명의 좋은 어른을 만나고, 그들에게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 몇명을 만나 행복한 추억이 많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 힘이 뿌리가 되어 세상을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과 용기로 만나게 된다면 그것이 좋은 학교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학교의 본질은 만남에 있다. 이제까지 살아온 가정과 다른 환경의 만남, 교사들을 통한 다양한 삶의 만남, 지식, 지혜와의 만남, 친구, 선후배와의 만남, 새로운 경험과의 만남.. 그러한 만남을 통해 진정한 자기자신과의 만남이 있는 곳이 학교이다. 나는 그런 만남의 공간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삶을 가지고 아이들 곁으로 간다. 내 삶만이 옳다거나 내 스타일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음.. 재미있게 사는 어른 한분이 계셨어. 그분이 좀 궁금하네’ 정도의 교육환경으로 아이들 앞에 서고 싶다. 아이들이 학교에 민경샘이 있어 조금더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며 삶에 호기심과 기대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용기있게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최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