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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공 Sep 01. 2020

나는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

[일일딸공] 엄마의 못다한 이야기, 엄마에게 못다한 이야기 

나의 대학교가 있던 포항은 가깝게는 구룡포, 감포, 조금 멀게는 울진 영덕까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바다가 참 많았다. 1학년 내내 엠티 장소가 늘 동해바다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해 말고 다른 바다도 좀 보자, 동해바다는 지겹다고! 버릇처럼 말하던 우리는 2학년이 되자마자 대천으로 엠티 계획을 세웠다. 포항에서 동대구역까지 기차로, 동대구역에서 보령까지 시외버스, 그 후 콜벤을 불러 선착장에 가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여정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굳이 핑계를 찾아보자면 사진 동아리니까 동해에 없는 장면을 찍어보자, 정도면 적당하려나.      


섬 이름은 호도였다. 호도라니! 이름마저 근사하지 않아? 근처로 엠티를 갈 땐 엠티 얘길 엄마에게 한 적이 없었던가, 전화통화 중에 나온 한 마디에 뭐 필요한 거 없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그 즈음 오빠와 내가 모두 집을 떠나고 한참 적적해 하던 엄마, 뭐 그냥 반찬이나 좀 해주면 좋고. 큰 생색 내 듯 내뱉는 나.   


동대구역에서 버스로 갈아탄다고? 엄마가 반찬해서 나갈게!      


엠티 가서 언제 우리가 밥을 먹었던가? 술 먹고 고기 먹고 라면 먹다 돌아오는 게 엠티 아닌가? 생각은 했지만 차마 말은 못 했다. 응, 그럼 조금만 해 줘 너무 많이 하지는 말고. 기차 시간 맞춰서 나오면 받아갈게. 내심 기숙사 생활 학식에 질리던 터, 엄마의 반찬이 그립기도 했다.       


아침 7시, 포항역 앞 해장국집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 통일호에 짐짝처럼 올라탔다. 종착역인 동대구에서 역무원 아저씨가 흔들어 깨울 즈음엔 이미 우리 모두, 반쯤 기절상태였다. 짐을 챙겨 플랫폼을 나오는데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엥, 근데 저 옷은 뭐지? 운동화는 또 어떻고? 대체 저 꽃무늬 신발은 뭐야! 그리고 저 바퀴달린 장바구니, 설마 저게 다 반찬은 아니겠지?       


투석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엄마는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녔다. 그러니 저 망사에 가까운 난해한 사파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거다. 짐이 많을 땐 바퀴달린 장바구니만한 게 없으니, 그 또한 백번 양보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런데 대체 저 목장갑은 뭐지? 먼발치에도 선명히 눈에 들어오는 선캡과 목장갑. 아, 부끄럽다. 장바구니 가득 반찬이라니, 짐스럽게 이만큼??        


- 딸공!! 이제 오니?? 아이고, 우리 딸공 친구들이구나! 반갑다! 
- 우와 니네 엄마 사투리 하나도 안 쓰신다!     


어색한 친구들의 인사가, 마치 네 엄마 옷차림과 다르게 말씨는 우아하시네, 안 어울리게! 하는 것 같았다. 당연하지. 우리 엄마 서울사람이라고. 분명히 반가운데, 입에서 자꾸 다른 말들이 나왔다.      


뭐 이렇게 많이 해왔어? 그리고 이 장갑은 뭐야? 아니, 언제부터 나와 있었던 거야, 내가 기차 시간 알려 줬잖아!      


반가운 마음에 나온 소리라고는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운 말들이 자꾸만 쏟아졌다. 장바구니에서 꺼낸 5층 찬합을 열어보지도 않고 주워 담는 나. 반찬을 건네고 떠나는 엄마의 어깨가 어떤 모양이었을까. 후에, 돌아보지 않은 그 날의 장면을, 나는 두고두고 상상해야만 했다. 이렇게 귀한 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철없는 나를 대신한 동아리 선배의 인사에 엄마가 애써 얼굴을 펴고 자리를 떠났던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호도에 갑자기 떨어진 짙은 비와 안개로 2박 3일이던 엠티는 4박 5일이 되었다. 뱃길이 다시 연결될 때까지 섬에 하나 있던 슈퍼에서 사온 쌀과 엄마의 반찬만이, 우리의 유일한 식량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많다고 투덜대지 말걸, 5층 찬합 칸칸이 담긴 땅콩조림과 진미채는 유난히 반짝이고 정말 맛있었다. 후에 그 맛을 기억하며 수십 번을 시도해도 절대 흉내 내지 못했을 만큼.      


기숙사 생활에 더는 반찬이 필요 없었고, 엄마의 솜씨가 그리운 날엔 이미 엄마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의 반찬은, 엄마가 내게 담아준 마지막 반찬이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끝내 사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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