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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Sep 06. 2021

분노가 산불처럼 번지는 날

자괴감이 날 끌어내리고 만다

항상 시작은 밥 씨름이다. 동심이들은 밥을 잘 안 먹는다. 식사 매너도 썩 좋지 않다. 밥 안 먹는 아이 굶기란 말도 기본적으로 먹는 것에 관심이 있고 식탐이 좀 있는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말. 돌밥 돌밥 하루 세 번 식사 준비하는 것도 버거운 내게, 잘 먹지 않은 아이들의 식습관은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큰 동심이를 겪어보니 그래도 학교 들어가고 많이 나아졌다. 새로 먹을 줄 알게 된 음식도 늘고, 속도도 빨라졌다. 그래서 시간이 약인 걸 잘 안다. 머리로는. 끝이 정해진 고충이 때로는 더 힘들다. 편식에 소식에 장난에 돌아다니기까지. 식사 중 하지 말았음 싶은 행동을 모두 모아 놓은 작은 동심이 식사 태도는 매일 저녁 내 신경을 건드린다. 


저녁 식사 시간이면 3차 방전 타임. 저녁 식사가 즐거운 건 너무 먼 목표다. 고성이 오가지 않게, 그저 평화롭게, 설사 그게 나의 연기일지라도, 그렇게 넘어가길 바라며 나는 저녁 식사를 앞두고 심호흡을 한다. 어떤 날은 요행히 잘 넘어간다. 그래, 오늘은 이만 먹자. 그리고 어떤 날은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오늘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식기를 치운다. 식사 태도를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내가 오빠랑 얘기 좀 하고 있는데 자꾸 끼어드는 그 태도를 물고 늘어진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때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들고는, 자기 말에 대답할 때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예의 그 습관. 오늘만 여러 번 시전 했다. 곧이어 며칠 째 난장판인 거실을 트집 잡는다. 또 한바탕 큰소리가 온 집안에 휘몰아친다. 엄마란 사람이 잔소리란 이름 아래 못된 말, 못난 말을 아이들에게 퍼붓는다. 멈춰야 하는데 멈추질 못한다. 


그래도 화를 가라앉히고, 내가 먼저 사과하고, 같이 책 읽고, 자기 전 허그와 같은 우리만의 의식을 치르며 아이들과의 일과를 마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한 번 솟구친 분노의 불길이 좀처럼 사그라들질 않았고, 미친 듯한 나의 분노와 아이들의 억울함, 속상함이 그대로 하루의 엔딩이 되고 말았다. 열댓 번을 들락거렸어야 할 아이들은 쥐 죽은 듯 나오지 않고, 나는 혹여나 애들 들을 새라 숨죽인 채 소리 없이 운다. 우는 모습까지는 차마 안 보여주고 싶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엄마, 엄마는 평소 땐 천사 같은데 화나면 좀비보다 더 무서워. 큰 동심이의 말이 생각난다. 천사표 엄마이길 바란 적은 없다. 괜찮은 엄마이고 싶었는데. 나란 사람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참 못났다 깨달으며 들기 시작한 자괴감도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관성이 더 빨리 붙는 건지. 한 번 물꼬를 튼 분노는 금세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한 번 날 붙든 자괴감은 더욱 세게 나를 끌어내린다. 돌이켜보면 이런 날이 더러 있었다. 좋지 않은 여러 상황과 맞물려 이런 상태가 길어진 적도. 


분노가 자괴감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너무 싫다. 그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것, 화를 내더라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은 어느새 나의 해묵은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나는 또 헤매고 있다. 일단 내일 아침 동심이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 좋은 엄마가 뭔지 어차피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최소한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엄마라도 되어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에 맡겨봐야겠다. 애정이, 여유가 자연스레 샘솟는 하루면 좋겠지만, 요즘 내 상태로 봐선 쉽지 않을 것 같다. 심호흡과 자제력을 기꺼이 장전하는 하루가 되길. 분노, 자괴감 따위에 나와 동심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내주지 않는 하루이길. 그렇게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길.  





Photo by mwangi gathec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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