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어려울 수가
저녁 식사 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나는 홈웨어 그대로 간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2단으로 본다. 우선 무릎 나온 펑퍼짐한 바지에 시선이 꽂히고, 이내 위로 날 훑는다. 또 저녁에 집 앞 빵집에 갈 때도 그런 복장으로 간다. 가다가 동심이 학원 선생님을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살뜰히 인사하는데, 선생님은 뭔가 당황하신 눈치다.
남들 보기에 썩 괜찮도록 애쓰는 것. 주부 되고는 체면치레할 일이 많이 줄었다. 생활인이 되면서 조금 더 실속을 차리게 된 면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일은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아이들 옷차림이 언제나 단정하면서도 멋스러웠으면 좋겠고, 나는 치장은 싫어하지만 깔끔하면서 적당히 스타일리시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고, 아이들과 외출했을 때 아이들을 타이르는 톤은 사뭇 점잖고 우아하다. 집 밖에서는 여러 여건이 집보다 불편한데도 좀처럼 버럭 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면 기억도 못 할 사람,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 걸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그들 보기에 멀끔한 외양과 괜찮은 사람이기를 자처한다. 왜 체면치레를 속시원히 벗어던지지 못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단지 쓰레기 집하장을 드나들고,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이 나는 괜찮았다. 그런 나를 이질적으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정말 괜찮았다. 그리고 체면치레를 드디어 이만큼은 날려버린 것 같아 통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괜찮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은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지만, 멀끔한 외출복을 입고 싶을 땐 입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내가 통쾌함까지 느낀 건, 보이는 걸로 쉽게 날 단정 짓지 말라는 무언의 일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여전히 남들 눈에 보이는 것 안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그깟 체면치레의 견고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Photo by Quinn Buff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