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오지랖.

by 쑥쑤루쑥

단지 안에서 산책하는 어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유난히 자주 마주친다. 할아버지는 거동이 힘들다. 아마도 재활 중이신 것 같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 다 상당히 연로하시다. 재활을 향한 할아버지의 의지가 대단하다 느껴진다. 볼 때마다 한결같이 부축에 열심이신 할머니의 정성도.


잠깐씩 뵌 세월이 벌써 3년여인데 할아버지가 많이 회복하신 걸로 보인다. 할머니의 부축 없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본다. 속으로 박수를 쳐드렸다. 그렇게 나 혼자 친밀감을 가진 상태였다.


외출 다녀온 길에 공동현관에서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 할머니와 가족들이었다. 아마도 손주들이 놀러 온 것 같다. 얼마 전 공동현관 인터폰을 일괄 교체했다. 키패드, 화면 구성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분명 이곳에 사는 사람인데, 몇 년을 문제없이 들락거렸을 그 앞에서 버벅거리는 어르신들을 좀 봤다.


한참을 요모조모 시도하던 할머니네 일가족이 비켜섰다.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는 뜻. 내 뒤로 할머니네 일행이 마침내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손녀들이 갸웃거리며 자꾸 얘기한다. 할머니가 하던 거랑 이게 저게 달랐다며. 몇 초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할머니, 열쇠 그림 버튼 누르고 시작하셔요. 그런데 할머니 반응이 차갑다. 내 알아요. 아는데, 잘하는데. 갑자기 저기 안 된 기라.


일반적으로는 노부부 살림만으로도 힘이 부칠 연배임에도, 할아버지 재활을 위한 산책까지 꼬박꼬박 챙겨 온 할머니였다. 기계가 좀 바뀌었기로서니 공동 현관 출입 같은 사소한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자식 내외와 손주들 앞에서 보인 게 자존심이 상하신 것 같은 눈치다.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엔 고민 없이 손을 내밀었다. 꼬맹이가 타다 내린 킥보드가 내 곁을 지나 차도로 돌진할 땐 킥보드부터 잡았고, 사람 얼굴 높이까지 짐을 실은 택배 카트가 엘리베이터 문턱에 걸리면 내 갈 길이 바빠도 열림 버튼을 눌렀다. 요청받지 않았어도. 일면식 없이도.


할머니를 돕겠다고 어쭙잖게 나섰다가 내 마음까지 불편해지고 말았다. 오지랖을 휘날리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궁금해졌다. 적절한 도움와 오지랖의 경계는 무엇인가.





Photo by Sangga Rima Roman Seli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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