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 이후에 안면을 튼 이들이 있다. 눈만 내놓고 인사하다가 동네에서 잠깐씩 마스크를 내린 얼굴을 본다. 내가 아는 얼굴이 맞는 것 같은데 또 아닌 것 같다. 망설이다가 인사를 했는데 저쪽에서 화답이 온다. 아, 아는 얼굴이 맞았구나. 사실은 얼굴을 튼 게 아니라 눈만 텄던 거다. 눈만으로 어떤 상상을 한 걸까. 눈에서 느껴지던 이미지와 사뭇 다른 인상을 처음 접하고 당황한 적이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당황스러움을 안겼겠지.
그런가 하면, 마스크 시대를 맞아, 나는 다음 생에나 가능할 줄 알았던 쌈닭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온갖 것이 거슬리는 프로 불편러임에도 야무지게 따지지 못하는 답답한 성격이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는 가끔씩 눈빛으로 레이저를 쏜다. 많고 많은 곳 중 하필 아파트 출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에게, 굳이 아이들 하굣길에서 끽연하시는 어르신에게, 개똥을 치우지 않는 반려견주에게. 여전히 별다른 말은 안 하지만, 눈빛에 힘을 꾹꾹 담아, 레이저 발사. 그럼 그것만으로 나는 속이 좀 후련하다.
작은 동심이 체육 하는 곳에서 한 엄마와 가까워졌다. 아싸를 자처하는 내 인생에 귀한 인연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조금씩 호의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쌓는 중이다. 최근 이사한 그녀는 내게 이사한 집에 초대하겠노라 했다. 집까지 왕래하는 건 분명 가까운 사이. 그 사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는 상상을 하니, 많이 어색할 것 같다. 눈만 알던 사이에서 안면을 아는 사이가 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터. 선교류 후안면. 코시국 그리고 마스크는 인간관계의 어떤 알고리즘마저 뒤바꾼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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