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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Mar 24. 2022

밀리미터의 세계

동명의 곤충 다큐가 있었지만, 이건 미용실 얘기다. 몇 해 전 큰 동심이 머리 하는 걸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날이 왔다. 나는 반드시 그날 안에 해결하리라 결심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골 미용실은 쉬는 날. 그런데 인근 미용실들마저 그날따라 많이도 쉰다. 어라? 이러면 곤란한데.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다가 상가 제일 안쪽에 있던 블루클럽이 떠오른 거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블루클럽에 들어섰다. 


원장님이 친절하게 물으셨다. 몇 미리요? 네? 아, 그냥 좀 다듬어주세요. 원장님 손길이 노련하다. 센스 있으시다. 손질이 끝나고 원장님이 다시 물으셨다. 샴푸 하실 건가요? 샴푸 안 하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 묻나 보다. 네. 해주세요. 저희는 셀프예요. 아, 그렇지. 샴푸 해 드릴까요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큰 동심이가 혼자서 잘 씻는다. 내가 도와주던 그 시절에도 머리를 감을 땐 마주 보고 했다. 이렇게 앞뒤로 서서 같은 방향을 보고서는 한 번도 안 해 본 것을. 아이 옷이 많이 젖었다. 물기를 털고 머리를 말리는 것도, 젖은 수건을 빨래 바구니에 넣는 것도 셀프였다.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결과물은 좋았어. 가성비 괜찮으니 찜콩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가게를 나서려는데. 단발머리를 한 10대 소년이 들어서며 말했다. OOmm요! 블루클럽, 그곳은 밀리미터의 세계. 





Photo by Diana Polekh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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