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과 지도

by 쑥쑤루쑥

내비게이션은 정말 신문물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알려줘, 각종 단속 구역 알려줘, 주유소 기름값까지 비교해준다. 그 편리함과 안정감에 익숙해지니 나는 잘 아는 길에서도 켜고 운전한다. 심지어 어디서 좌회전해야 하는지, 그래서 어느 타이밍에 좌회전 차선으로 갈아타면 되는지까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는 곳이 정작 우리 집에서 동서남북 어느 방향인지를 잘 모르겠다.


아빠 차에는 늘 지도책이 있었다. 그 시절 부모님 세대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장거리 여정이면, 몇 번 도로에서 몇 번 도로로, 어느 지점에서 갈아타야 하는지 두꺼운 지도책을 펼쳐 확인하고 출발했다. 어느 구간을 몇 차선으로 달리는지까진 알 필요도 없이, 아빠 차는 구석구석을 잘 누비고 다녔다.


새 동네로 이사 온 지 3년여인데, 간혹 익숙한 지명을 지도로 확인할 때,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다. 거리며 방향이 내 예상치를 벗어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우리나라 전도와 세계지도가 있었다. 새 동네로 이사 가면 그 지역 지도가 추가됐다. 집안 곳곳에 지도가 있었다고 해서 내 지리적 감각이 대단히 좋은 건 아니지만, 부모님이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 요즘이다.


내 부모님이 그리하셨듯, 지도를 알아본다. 관광지도 말고, 유아용으로 나온 팬시한 지도 말고. 제대로 된 지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한 번 더 놀란다. 내비게이션의 편의성과 디테일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머릿속 세계가 딱 그만큼 더 좁아지는 건 아닌지. 큰 틀을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에 나는 그런 걱정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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