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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Apr 01. 2022

써치펌에서 연락이 왔다.

큰 동심이 임신하고 출산휴가를 끝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끝났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그 분야에서 10년 정도 워커홀릭으로 일하며, 연차 대비 경험은 풍부한 편이었다. 전업주부로, 주양육자로 아이를 돌보면서도 간간이 써치펌에서 연락이 왔었다. 끝내 거절했지만 아직 시장에서 나를 찾는다는 사실에 상당한 위안을 받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헤드헌터들에게서 손절당했다. 정확히 기억한다. 둘째를 임신했다는 근황을 전하면서부터였다. 애가 둘이면 전업주부였던 이들이 다시 커리어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나름의 판단을 했을 거다. 알지만 서운했고, 이해하지만 슬펐다.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메일을 받았다. 써치펌에서 온 메일이었다. 써치펌 이름은 낯설었으나, 포지션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고 상세했다. 내 커리어에 10년 동안 내려앉은 뿌연 먼지를 후후 불어 알아봐 준 느낌을 받았다. 위로가 아니라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응할 수 없다. 이제는 기회만 부족한 게 아니라 자신이 없다. 기댈 곳 없이 오늘도 가족을 위해 열 일하는 남편, 그리고 기댈 곳 없이 오늘도 돌봄과 살림을 도맡아 하는 나. 돌봄과 살림도 절반씩 하고, 소득 창출도 절반씩 하는 아름다운 계산은 우리 집 그리고 다수의 가정에 아직은 어렵다. 게다가 육아는 외주화 하면 그 또한 누군가의 경력이겠지만, 직접 하는 부모에게는 커리어에 거대한 쉼표를 남기는 도전이 분명하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이번에도 나를 스쳐 지나간다. 지난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나 역시 많이 아쉽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진 않겠다.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겠다. 반드시. 




Photo by Avel Chukla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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