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소신은 없으나 걱정은 많은 피곤한 성격에 힘입어, 어쩌다 보니 둘째 아이를 꽤 오래 가정 보육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3월 우리 집 작은 동심이는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집안일과 육아에서 놓여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첫날, 내가 한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 짐이 유난히 많았던 어떤 방을 갈아엎어 살림을 솎아내고 속 시원하게 정리했다. 그때는 아이 등원 후 집안 구석구석에 광을 내며 보람을 느꼈었다. 스팀 청소를 매일같이 하고, 식구와 먹을 반찬을 만드는 식으로.
'애둘라이프'. 각오를 뛰어넘은 강도 높은 육아와 살림을 몇 년 더 해내고 다시 맞은 그 시간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사뭇 달라졌다. 뭔가 건설적인 걸 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주부로서 하루 일과는 빽빽하지만 '나'는 없는 생활에 위기감을 느꼈고, 이런 패턴의 하루하루가 모여 남은 내 삶이 된다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경험을 했다.
하여 모두가 함께 하는 바쁜 아침이 출근-등교-등원 순으로 마무리되면, 음식물쓰레기 배출과 설거지 정도의 집안일만 하고 간단한 운동부터 한다. 그러고 나서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기록을 정리하거나, 구직 활동을 한다. 무엇이 건설적이 될지 알 수 없다. 가정 경제가 튼실해질지, 심하게 녹슬어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나의 옛 재주가 다시 빛나게 될지, 이도 저도 안 되어 지금도 열심히 마시고 있는 고배의 기록을 경신하며 도전 정신이라도 투철해질지.
글쓰기도 그중 하나였다. 써온 글이라곤 혼자 랩탑에 끄적여온 일기가 다였다. 그러다 나에게 주어진 짧지만 귀한 저 시간을 악착같이 사수하며 뭐라도 만들어보려 애썼지만 그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면서 겪은 성토의 글을 단골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었다. 어떤 맘님이 브런치 도전을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단칼에 거절했다. 글솜씨도 자신 없었고, 무엇보다 독자를 전제로 한 플랫폼에 내 글을 내보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고백컨데 인생 최고조로 옅어진 이 시점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그리고 부단히 날린 도전장 중 유일하게 응답해 온 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N차 도전 후기가 떡하니 공지된 마당에 '한 방에' 심사를 통과했다는 점을 꼭 자랑하고 넘어가야겠다. 호호.
내가 원하던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업'은 아니었지만, 육아와 살림을 제외한 영역에서, 어떤 가능성 비스름한 것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너무 기뻤다. 작은 동심이 체육 수업 참관 중 무심코 온 메일을 열었다가 나는 조금 울었다 (그렇다. 나의 모든 희로애락은 육아의 현장 혹은 바로 그 곁에서 벌어진다). 브런치의 메일은 표면적으로는 내 글에 건네 준 응원이었을 테지만, 내게는 그 이상이었다. 없는 것도 쥐어짜 낸 내 용기, 스스로를 가둬온 틀을 깨부순 패기에 가깝던 내 도전, 그리고 가늘고 헤진 상태로 근근이 붙들어 온, 글쓰기를 향한 내 끈에 대한 응답이었다.
하지만 벅찬 마음에 머지않아 고민이 일기 시작했다. 일기 같던 내 글로 충분할까? 글을 좀 더 별러야 하지 않을까? 내 글이 누군가에게 통할까?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읽을만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내 얕은 밑천이 곧 드러나지 않을까? 내 글에 수사가 좀 부족하지 않나? 글솜씨에 열 올리다 나다움을 잃으면 어쩌지? 와 같은.
그 모든 질문에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나의 브런치가 되지 않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브런치를 시작하고부터 글쓰기가 더 소중해졌다. 해오던 대로 내 이야기를 해볼 참이다. 조금은 두려워졌지만 여전한 설렘과 함께. 걱정병과 김칫국은 글을 쓰는 순간만이라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