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지 마세요. 마지막 직장의 첫 번째 상사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대단히 포커페이스인 사람 입에서 나올법한 저 말은, 정작 대표이사의 말 한마디에 얼굴색이 바뀌고 필터링 없이 팀원들을 박살 내는 그 자신에게 할 말이었다.
한 때는 나도 포커페이스였다. 첫 직장 입사동기들이 놀라워했다. 넌 힘들지 않냐고. 어쩜 그렇게 티가 나지 않냐고. 2년여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화를 참으면 기쁨도 없어진다는 것을. 그렇게 가슴에 울화만 남아 퇴근만 하면 집에 가서 그렇게 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이후부터는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살진 않았어도 무리하게 숨기지도 않았다. 어차피 부정적인 감정을 대차게 내보이는 성격도 아니었다. 지금도 일희일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 깔깔 웃다가도 불같이 화를 내고 또 엉엉 운다. 그 모든 감정이 상당히 격렬한 수준으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올 수 있다.
그런데 이젠 조금 무던해지고 싶다. 깔깔거리는 웃음 대신 빙긋하는 웃음, 격렬한 분노 대신 그럴 수도 있겠다는 관용, 날 끌어내리는 슬픔 또한 곧 지나갈 것임을 믿는 여유. 그런 잔잔함이 갖고 싶다. 이 나이 먹고 보니 나이 먹는다고 절로 생기는 덕목이 아닌 것 같은데. 타고나길 글렀으니 영 안 되는 일일까. 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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