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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는 사람

글쓰기

by 쑥쑤루쑥

최근 몇 달간 정신이 없었다. 경단녀 꼬리표를 반쯤 뗄 수 있게 해 준 일을 내 일과에 끼워 넣으면서 기존 일과와 충돌이 많았다. 아직도 연착륙이라고 보긴 어렵다. 절충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러는 사이사이 펀치가 훅훅 들어왔다. 온 식구가 400km 떨어진 전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할 뻔했으며, 번아웃이 심하게 온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가 치열하게 뒤엉킨 생활터전에서, 이번 생엔 불가능한 1인 가구를 꿈꾸며 방황했다. 남편은 정신과 상담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정신과에 갈 용기는 끝내 내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함께 찾아오는 온갖 염증을 약으로 다스리며, 그럭저럭 불같은 어제와 물 같은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몇 달만에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내게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마음도 고이는 모양이다. 뿌예진 마음이 나 자신은 물론이요 날 둘러싼 모든 걸 제대로 읽어냈을 리 없다. 마음 편해지는 것이 그토록 간절했으면서도, 마음을 솎아내는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뭘까. 우선, 정말 여력이 없었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수레바퀴가 어렵사리 한 바퀴 돌듯, 불안하게 덜그럭거리며 하루를 지냈다. 또 다른 이유는 벽이었다. 스스로는 너무 잘 알고 있는 나의 수많은 단점에 대해 쓸 자신이 없었다. 얕디 얕은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건 내겐 두려움이었다.


짬짬이조차 끄적이기 힘들었던 시간이 멀어진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잠시 손에서 놨다고 매끄럽게 이어가기가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이 당황스럽지만. 내 글쓰기에 내가 정한 경계를 다시금 들여다보며, 이렇게 기록을 이어간다.





Photo by Debby Hud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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