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쑤루쑥 Mar 08. 2023

점점 무거워지는 무게, 생계.

띡띡띡. 도어락 잠금 해제하는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본다. 몇 분 후면 자정. 시계를 보는 내 눈엔 눈물이 줄줄 난다. 너무 피곤해서 줄하품을 하고 난 뒤다. 육퇴하고 다음 날 일할 준비를 좀 하고 노트북에 끄적이는 중이었다. 야근이 일상인 남편이 퇴근했다. 그런데 얼굴빛이 많이 어둡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맨날 있는 곳이 회사인 줄 나도 안다. 남편은 일 욕심이 많고 일을 잘한다 (부부이기 이전에 같은 회사 동료였다). 워커홀릭이 힘들어하는 건 일 때문이 아니다. 일 많은 건 오히려 즐기는 면이 있을 정도니까. 


업무 외적인 부분이면서도 회사 생활에서 결코 덜어낼 수가 없는 어떤 고충들이 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 그런데 힘들어하는 강도가 이번엔 좀 다르다. 저러다 숨넘어가면 어쩌나 싶어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하다 (남편은 실제로 쓰러진 적이 있다). 




이럴 때 온갖 감정이 드나든다. 우선, 남편이 너무 안쓰럽다. 1인 가구였다면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조금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걱정이 된다. 직장에 능력과 시간은 내줄지언정 건강만큼은 내주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어쩐지 그 약속이 어긋날 것만 같아서. 그러다 끝내는 무서워진다. 이렇게 심신을 혹사하다 과로사하면 어쩌지. 이건 내가 걱정병 환자라서가 아니다. 가까이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어 내겐 과도한 허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실제로 업무에 과몰입하면서 운동 좋아하는 남편은 점점 운동과는 멀어지고 내가 하는 10분짜리 홈트도 버거워하는 상황이 되었다. 


숨 넘어갈 듯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두 손으로 토닥이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일을 어디까지 늘릴 수 있을까? 그럼 생활비의 몇 퍼센트까지 충당할 수 있을까? 결과값을 이미 안다. 자주 시뮬레이션해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럽고 치사하면 관두자. 당분간은 내가 일을 늘리고 대출로 버텨보자.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구멍, 아니 명치에서부터 걸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던 이유다. 빈 말이라도 가장의 압박감을 내려줘야 했지만,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남편이 내게 회사 생활의 고충을 바늘만큼 성토할 땐 그 너머에 집채만한 쇳더미가 있음을 안다.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점점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공감해주고 같이 분노해 봤다. 나름대로의 솔루션을 제안해본 적도 있다. 심리 상담을 권해도 봤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따로 있지만, 거기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정서적인 데미지를 좀 줄여봤으면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노력도 이번만큼은 남편에게 가닿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조용히 지켜보는 길을 택하려 한다. 


내가 맞벌이었으면 이럴 때 조금 쉬어갈 수도 있을 텐데 경제적인 버팀목이 돼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남편은 그게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게 본질이었다. 월급 때문에, 가족의 생계 때문에 고된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므로. 때로는 자존심과 자존감에 상처까지 입어가며. 해가 갈수록 너무 무거워진다. 생활비가. 내 남편의 어깨가. 지친 남편을 보는 내 마음이. 생계의 무게. 





사진: UnsplashMufid Majnun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마저 경쟁하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