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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ul 08. 2021

만화와 미드를 권하는 부모

딴짓의 힘

대학시절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 영화 음악이 듣고 싶어 졌다. 한데 영화 제목이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검색 끝에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흥얼거리며 저녁을 준비했다. 15년도 더 전에 본 영화음악을 들으며 나는 그 영화의 장면 장면과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본 그 시절의 나를 회상한다. 대학 시절 나는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다. 탁상 달력에 영화 개봉일을 적어놓고 개봉작은 거의 빠짐없이 관람했을 정도로 영화를 꽤나 좋아하던 때다.


어릴 적부터 집에서 영화를 즐겨 봤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영화를 좋아하신 덕택이었다.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TV 방영 이외에도 가끔 가족이 극장 나들이를 갔고, 아빠가 자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오셨으며, 어떤 건 비디오테이프를 소장해서 보고 또 보기도 했다. <쿼바디스>,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고전을 볼 때면 부모님이 공감의 대화를 나누셨던 기억이 언뜻 난다. 덕분에 나는 영화 그리고 극장과 일찌감치 친해졌다. 대학생 오라버니가 방학을 맞이하여 본가에 오면 오빠는 내가 수험생이었을 때도 날 데리고 극장에 갔으며, 나까지 대학생이 되고 난 다음에는 누구랄 것 없이 본가에 가면 엄마랑 극장에 가곤 했다.


기억을 되짚어 봤다.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큰 동심이 나이쯤이었나. 집에서 '갤러그'라는 게임을 할 수 있게 됐다. 아빠가 설치해주신 게 몇 비트짜리 컴퓨터라고 했다. 조이스틱까지 연결해서 우리 남매는 집에서 게임을 했다. 아빠는 학습 만화에 그치지 않고 '아이큐 챔프'와 같은 만화 잡지도 꼬박꼬박 사주셨다. 한창 순정만화에 빠져들던 중3 때, 부모님 몰래 만화를 빌려봤다가 혼났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만화책을 금하는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가 하면, 미드를 일찌감치 섭렵하신 엄마의 인도로 나는 미드에 입문했다.


부모가 되고 나서 동심이들을 어떤 식으로 키워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가끔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며 답을 찾는다. 영화는 아직 두 아이 모두의 눈높이를 고려한 작품 선택이 쉽지 않아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그야말로 신식 놀거리,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진다. 아이보다 앞서 받아들이고 인도해주는 것까지는 자신 없다. 우리 부부도 동심이들이 만화, 유튜브,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대시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포맷보다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보려 노력한다. 애들이랑 가끔 오락실에도 간다. 한 번씩 가면 지출이 너무 커서 오락기를 집에 들일까 장고 중이다. 미디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시대의 흐름이라면, 콘텐츠를 선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우고, 중독으로 이어지지 않게 이용 시간을 자제하는 방법이 합리적이겠단 생각도 든다. 우리 집에서도 여러 모로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나의 딴짓은 영 생뚱맞진 않았던 것 같다. 문화라는 영역 여기저기에 좌표를 부지런히 찍고 다닌 셈이었으니 말이다. 경험해 보니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삶의 동무가 된다. 삶의 쉼표가 된다. 관심사에 흠뻑 빠져 지냈던 20대 시절에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결혼과 출산을 거쳐 생활인 모드로 전환하고 나서는, 가끔 기대 쉴 수 있는 나무 같은 존재랄까. 스크린에 걸린 영화를 본 건 여전히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육퇴 후 어쩌다 한 번씩 VOD로 보는 영화 한 편도 꿀 같다.


동심이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졌다. 형편에 넘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이 문화나 예술 관련한 경험을 많이 하게끔 도와주고 싶다. 양보다 꾸준함이다. 그중 어느 씨앗이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아이에게 쉼터가 되고 오아시스가 될지 모를 일이다. 훗날 영화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도 좋고, 곡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좋다. 마냥 좋았던 어느 순간의 경험이, 미래의 어느 날 불현듯 즐거운 기억으로 꽃 피우고 고된 일과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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