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에 소년, 소녀가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와 소녀의 아버지는 같은 직장에 다녔다. 소년네는 아들이 많았고, 소녀네는 딸이 많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년과 소년의 형제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다녔다고 한다. 두 집안의 어른들이 막역하게 지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훗날, 소년은 소녀와 결혼했다. 친척도 아닌데 같이 목욕탕에 다니던 두 남자는 장인과 사위가 되었다. 두 집안의 남매들은 나이대가 비슷했다. 학창시절 동창이거나 동문이었다. 덕분에 장차 이어질 소년, 소녀의 집안 경조사는 흡사 동문회 같았다. 예컨대, 소녀의 바로 아랫 동생과 소년의 바로 아랫 동생은 집안 결혼식에서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미소로 해후하는 것이다. 중년의 동창이자 사돈이 되어.
소년과 소녀는 내 부모님이다. 사실 내 조부는 내 외조부 이전, 내 외증조부와도 친하게 지냈다고 하니, 두 집안 교류의 역사가 참으로 길다. 하지만, 지금. 교류의 물꼬를 튼 어르신들은 모두 귀천하셨다. 이제 전국에 흩어져 제각각 사는 그 형제자매들로서는. 건너 건너 사는 소식을 듣고 사는 일, 그러다 애경사엔 축하를, 슬픈 일엔 위로를 건네며 사는 정도다. 그럼 그 교류의 역사가 이대로 희미해질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내 친가의 가족묘지와 내 외가의 납골당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어쩜 약속이나 한듯 육신을 두고 가는 곳마저 이토록 가깝다니.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양가 어르신들의 빅픽처인가. 장례식과 이별은 슬프지만, 죽어서도 이웃사촌인 내 부모님의 집안을 생각하며 나는 가끔 웃음 짓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각별한 이웃사촌을 나는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