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항상 마른 체격이셨다. 손이며 팔에 핏줄이 울퉁불퉁한 게 어린 눈에도 신기했다. 그래서 자주 만졌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학교 글짓기에 올록볼록한 아빠 핏줄을 주제로 시를 써서 냈다. 그게 학교 정기간행물에 실렸다. 처음으로 내 글이 어딘가에 실린 순간이다.
아빠는 뼛속까지 공학도인 동시에 예술적 감수성이 남달랐다.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축복이라 생각하는 1인으로서, '멀티'에 능한 그 첫 번째 인물이 내겐 아빠였다. 살아 계셨다면, 브런치에 글 좀 써보시라고 권했을 것 같다. 그러고는 모르는 척 좋아요를 눌렀을 것 같다. 우리 식구들은 그렇게 살았다.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던히 거리를 뒀다. 그러는 게 익숙했고, 편했다.
브런치에서 굳이 딸과 소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빠에게 좋았을 것 같다. 은퇴 후 글 쓰기가. 글쓰기를 통해 가족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와 세상구경이. 그리고 아빠 글엔 무심한 듯해도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는 가족이. 내겐 제법 익숙해진 글쓰기를 할 때마다 아빠가 자꾸 떠오른다. 곧 아빠 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