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빠 장례를 치르며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혹자는 나를 나무랐다. 호칭도 내 나이에 맞게 변해야 하는데 다 커서 아빠가 뭐냐며. 하지만 나는 내가 아빠를 평생 아빠라고 불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딸이라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애교'가 전혀 없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보시던 신문에 지면 광고가 있었다. 커다랗게 인쇄된 아기가 너무 귀엽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가, "우리 OO가 더 귀엽지"라는 다정한 말에 어린 나는 온 얼굴이 불타올랐다. 온몸이 굳은 채로. 애교쟁이였다면 사랑스럽게 웃으며 꽃받침을 한다던가 안겨왔을 텐데. 게다가, 스무 해를 못 채우고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작한 나는 어찌 보면 지나치게 독립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말수 적은 아빠와 집에 연락 잘 안 하는 딸은 어쩌다 보니 늘 300km 이상 떨어져 살았다.
그런 내가 아빠를 '아버지'라 부른다면 '나는 이만큼 컸어요. 철도 들었다고요'라는 선언이었을 것이요, 아빠 입장에서 내가 더 멀게 느껴졌을 것 같다. 아빠. 아빠란 말은 짧게 말해도 길게 말해도. 끝을 올려도 내려도. 내가 아이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콧소리나 애교 한 방울 없이도 살가울 수 있다. 살갑지 못했던 딸의 뒤늦은 합리화가 참으로 기똥차다.
아빠는 과묵하신 편이었지만 내가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언제나 다정하게 화답해 주셨다. 아빠 목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가끔 아빠라고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어이. 아빠 목소리가 내 귀에만 들려온다. 부드러운 그 음성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 때로는 안도의 미소가 퍼지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제는 아빠라는 말이 제아무리 살가워도 내게로 돌아온다. 아빠를 불러본다. 나를 부르는 소리다.
사진: Unsplash의 Pawel Czerwi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