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장례를 치렀다. 마음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나는 어김없이 일기를 남겼었다. 그런데 아빠와의 작별은 여전히 써 내려가기가 어렵다.
며칠 전 휴대폰으로 예전 SNS를 우연히 들여다보게 됐다. 큰 동심이를 아기띠에 안고 코끝에 안경을 걸친 아빠가 보였다.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조손 지간. 큰 동심이는 마냥 신난 얼굴이다. 어, 아빠다. 나는 휴대폰 화면에 입을 갖다 대고 뽀뽀를 했다. 이내 아빠의 모습이 일렁거렸다.
장례식장에서는 조문객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었고, 장례 직후에는 행정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바빴으며, 남은 우리 식구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는 20여 년을 넷이서 북적이다가, 다시 20여 년을 오붓하게 남편과 지내온 집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야 했다. 엄마 평생 처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노쇠해진 심신으로. 오빠는 아빠의 부고로 필요해진 행정 업무들을, 식구를 대표하여 분주하게 처리하고 업무로 복귀했다.
다행히 여건이 되는 내가 큰 동심이를 데리고 본가에 더 머물렀다. 이모들과 함께. 우리는 홀로 남은 엄마를 위해 집에 온기를 채우려 애썼다. 북적북적 다 같이 집밥을 해 먹고 집안 살림을 정비하면서. 어찌 보면 누구에게도 슬퍼할 틈을 안 줬던 것 같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일까. 그리움의 끝은 십중팔구 눈물이다.
겨울이면 나는 땅굴을 판다. 남편은 아빠 일이 있고부터 내가 그런 것 같다고 진단한다. 요즘 아빠 생각이 유난히 많이 난다. 석 달만 있으면 아빠와 이별한 지 만 5년. 아직도 기일보다 생신이 더 익숙한 것을.
슬픔에도 정반합이 있는 걸까. 처음 몇 년은 못 해드린 것, 후회스러운 것만 생각나 너무 죄송하고 괴로웠다. 그러다가 뒤늦게 아빠에게 내가 안겨 드렸을 기쁨을 헤아리게 되었다. 아직 '합'의 단계에 이르렀노라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지금 전해드릴 수 있는 기쁨을 아빠는 누리지 못한다는 현실이 떠올라 다시금 슬퍼지므로.
하지만,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보다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고대한다. 고마움의 미소. 그리움의 미소. 사랑의 미소. 행복한 미소. 그런 미소를 짓고 싶다. 사랑하는 아빠에게. 사무치게 보고 싶은 아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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