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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Oct 31. 2021

마당에서

지금이야 아파트에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열다섯 살 때까지 단독 주택에서 살았다. 단독 주택의 백미는 마당. 10여 년을 살았던 주택의 마당은 아기자기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수돗가, 장독대, 창고가 있었다. 골목과 면한 담벼락엔 라일락, 대문을 지나 현관으로 오는 길엔 등나무, 대문 양 옆엔 향나무, 창고 옆엔 무궁화. 그 외 화분에 심어진 여러 식물들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큰 화분에 고무줄을 걸어 고무줄놀이 연습을 한 적이 있고, 오라버니와 돋보기로 곤충을 관찰하기도 했으며, 장독대에 올라가 골목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 마당이었다. 


휴일엔 마당에서 톱밥 냄새가 짙었다. 취미로 목공을 하시던 아빠 덕분이었다. 목수처럼 귀에 연필을 꽂고, 손수 제작한 작업대에서 아빠는 나무를 재단하고 뚝딱뚝딱 가구를 만들어내셨다. 그렇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티비 받침대며 벤치가 아빠 손끝에서 완성되곤 했다. 나는 아빠의 작품이 참 좋았다. 세심하게 다듬은 디자인과 직접 칠하신 그 색깔까지 고스란히 기억한다. 공학과 미학이 만나는 목공은 아빠에게 참 잘 어울리는 분야였다. 부모가 되고 보니, 가장으로서의 삶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건강한 취미이자 휴식처로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빠는 걸어서 퇴근하셨는데, 하루는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목재 운반을 남매가 도와줄 수 있겠냐는. 아빠는 길게 재단된 목재 몇 판을 어깨에 이고 걸어오고 계셨고, 오빠와 나는 흔쾌히 달려 나가 마중을 겸해 운반을 도왔다. 아빠와 만난 지점도 집에서 지척이었고, 초딩 두 마리가 무슨 힘이 있어 도움이 얼마나 됐을까 싶지만, 그날의 흥분과 셋이 걸어오던 그 저녁 길이 내겐 생생하다. 


이사한 다음 주택에서는 마당이 굉장히 넓어졌다. 내 방 앞엔 단감나무와 수선화 화단이, 거실 앞엔 동백나무가, 오빠 방 앞엔 장두 감나무가 있었고, 사이사이 굉장히 다양한 수목과 화초가 함께였다. 나중엔 마당 한 편에 아빠가 텃밭도 가꾸셨다. 넓어진 마당에서 아빠는 더욱 여유롭고 자유롭게 목공 작업을 하며 당신의 삶과 휴식을 가꾸신 것 같다. 


그 주택을 끝으로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후엔 다시 주택에 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의 목공도 그 길로 멈추었다. 원래도 곰살 맞은 성격은 아니었지만, 중고딩 시절을 지나며 유독 무뚝뚝했던 딸이었다. 대입과 함께 서울로 떠나버렸고, 이후엔 타향에서 내 앞가림하느라 아빠의 삶엔 별 관심이 없던 나. 이제야, 취미를 이어가지 못한 아빠의 삶이 눈에 밟힌다. 요즘은 목공소에 취미반이 있다고. 아빠의 즐거움을 넘어 새로운 직업이 될지 또 누가 아냐고. 단 한 번을 살갑게 여쭤보지 못한 나의 무심함 속에서, 오늘도 그리움과 후회가 진하게 교차한다. 




Photo by Milan Popov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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