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심이와 단지 산책을 했다. 밤새 내린 빗줄기가 온 바닥을 촉촉하게 적셔 놓았다. 군데군데 있는 물웅덩이를 일부러 지난다. 내 그럴 줄 알고 장화를 신겼다. 킥보드를 타고 물웅덩이를 통과한다. 마른땅으로 올라오면 그 길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땅에 물로 그리는 그림.
뱅글뱅글 유려한 곡선을 남기고 되돌아오는 길. 비가 씻겨 준 깨끗한 공기를 쐬러 어르신이 나오셨다. 어르신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다. 어르신의 거동은 불편하지만, 또랑한 말소리가 쉬지 않는다. 휠체어를 미는 이에게 경어를 쓰시는 걸 보면 가족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포스만은 스파이럴 시퀀스를 선보이는 김연아 선수처럼 (그래, 내가 너 뱃속에 있을 때 김연아 선수 스케이팅 영상을 많이 보긴 했어!). 작은 동심이가 킥보드를 주우욱 굴리며 간다. 휠체어를 가로질러.
순간, 할머니의 목소리가 멈춘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빛이 아련하다. 치마를 펄렁거리며 바람을 자유로이 가르는 작은 동심이를, 휠체어에 발이 묶인 할머니가 본다. 60년은 됨직한 시간을 사이에 두고, 과거와 미래가 교차한다. 아이의 발끝에서는 여전히 빗물이 궤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날아가는 시간의 꼬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