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미터 앞에서 그녀가 걸어온다. 얼마 전 학부모 참여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우리는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유치원 같은 반 친구였다. 지근거리를 제법 일상적인 수다로 채워가며 우리는 안녕히 가시라고 서로에게 인사했다. 그러고 난 다음 날이었지 싶다. 나는 그냥 목례를 하고 지나칠 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더니 모른 척 스쳐간다. 인사를 안 하고 싶다는 뜻이다. 마음 잘 통하는 친구야 이미 각자 있다. 이 나이에 아이'의' 친구'의' 엄마로 만나 깊은 사이로 가는 경우는 흔치 않고, 섣불리 바랄 일도 아닌 것을. 기껏해야 오다가다 마주치면 까딱거릴 가벼운 목례나 눈인사 정도인 것을. 그마저도 시작하기 싫다는 뜻이다.
이곳 생활 5년 차. 지기도 있고, 큰 동심이'의' 친구'의' 엄마들 중에 운 좋게 마음이 통하는 이가 몇 있어 아싸임에도 고립무원은 아닌 채로 이럭저럭 지낸다. 반면, 목례만으로 N 년을 채워 온 사이도 있다. 대화 한마디 안 나눴어도, 티타임 한 번 안 했음에도.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미션을 수행 중인 엄마로서의 공감과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에 대한 예의로. 우리는 가벼이 서로에게 미소 지을 수 있다.
그러다 며칠 전, 본의 아니게 다른 두 명의 엄마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일전에 언급한 순정남 아빠가 주관한 듯한 사랑방 앞을 우리 모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합석을 권유받은 것이다. 아이들끼리도 같이 놀고 싶어 해서 고민 끝에 수락한 나는 다른 두 엄마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등하원길에 오다가다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시원한 커피를 대접받은 나는 꼬마들에게 시원한 우유로 화답했다. 30분 남짓이었을 거다. 유난히 작은 테이블에 러시아워 지하철 뺨칠 만큼 딱 붙어 앉은 채 듬성듬성 어색하게 이어가던 대화에 나는 꼬마들 형제관계를 물었고, 역으로 몇 동에 사는지, 이따가 아이가 어떤 학원에 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됐다. 엄마들은 적당히 젠틀했고, 적당히 유머러스했으며, 적당히 사교적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 날. 새로 안면 튼 한 엄마를 등원길에 마주쳤다. 본의 아니게 약간의 교류가 있었던 사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혹시 씹히거나, 저쪽에서 일전의 그녀처럼 어떤 시그널을 보낸다면 그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그녀. 너무나 환하게 인사한다. 작은 동심이에게 내보인 미소는 단언컨대 미스코리아 같다. 나는 다른 집 아이에게 저렇게 상냥하게 인사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단 반성이 일렁인다. 인간관계의 피로와 예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 타는 계산은, 제 아무리 아싸여도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건의 계산은 정산이 되었다. 우리는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한 셈이다. 우리가 어떤 사이로 남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편의 대신 예의를 택한 그녀의 선택이 반갑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