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주부는 내 것이었다. 내가 이 집안의 유일한 주부가 되는 동안, 짝꿍은 이 집안의 유일한 벌이 담당자였다. 각자의 어깨가 참으로 무거웠다. 오리지널 이주부가 소일을 하는 시간은 평일 낮 잠깐, 평일 밤 잠깐, 그리고 토요일 하루다. 일주일에 두 번, 평일 낮에 작은 동심이는 유치원에서 일일 종일반에 맡겨진다. 일주일에 두 번, 평일 밤엔 짝꿍이 야근이나 회식을 하지 않고 집으로 재깍 와야 한다. 토요일엔 짝꿍이 아이들을 거의 홀로 전담마크한다.
가장 고됐던 하루의 '3부'를 (1부 = 등교/등원 전, 2부= 등교/등원 후부터 하교/하원 전, 3부 = 하교/하원 후) 일주일에 두 번은 짝꿍이 담당하게 된 셈이다. 시작은 나의 벌이였지만, 다른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다. 결혼하고 거의 처음으로 주 2회 아빠가 일찍 오니, 동심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나의 부재를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 아빠는 나보다 역동적으로 놀아주고, 나보다 잔소리를 덜 하니,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주양육자로서 늘 '양'은 내가 담당하고, 짝꿍이 '질'을 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은 좀 억울하지만). 소일을 마치고 오면 짝꿍은 지쳐 있다. 평일의 내 모습이 이랬겠구나 싶다. 얘는 이랬고, 쟤는 이랬어. 말이 통하는 어른이 반갑다. 상대가 오자마자 재잘대는 모습마저 나다.
주말은 호흡이 길다. 일단, 내 소일을 하는 와중에도, 남편의 기타 레슨 시간은 반드시 보장한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주 7일 중 가장 긴 날. 남편의 독박육아 역시 가장 길다. 저녁에 본 그는 아침에 본 그가 아니다. 얼굴빛이 시커메져 있다. 요즘 그는 토요일 밤이면 디아블로를 하러 PC방에 간다. 출발 시각은 내가 일을 마치고 오자마자. 바통터치 하기가 무섭게 육아에서 탈출하고 싶은 그 마음. 잘 안다.
오늘은 일요일. 나보다 더 피곤한 남편은 낮잠을 자고 있다. 동심이들과 나는 동네 산책을 가려한다. 같이 가자고 하니, 제대로 눈도 못 뜬 오만상으로 남편이 말한다. 다녀와. 밥 해 놓을게. 나는 요즘 이주부 2호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다. 내 모습이 저랬겠구나 싶은 한편, 내 모습인 짝꿍이 낯설기도, 통쾌하기도 하다. '봐. 돈 버는 것도 힘들지만 육아랑 살림도 장난 아니라고.'를 체득하고 있으므로. 이주부 2호는 내 일이 대박 나서 그가 전업주부가 되는 날을 꿈꾼다. 나는 일도 같이, 육아와 살림도 같이 하는 지금의 이 밸런스가 좋지만. 그의 바람이 이뤄져도 나쁠 것 같진 않다 (일단 이뤄지고 볼 일이다). 우리 집엔 그렇게 이주부가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