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집은 몇 동이야? 아이들이 교류하다 보면 애들 입에서 으레 나오는 질문이다. 내가 사는 단지는 동마다 평형이 달라서 몇 동에 사는지 알면 몇 평인지 알 수 있기에, 중의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는 굳이 일부러 먼저 묻지 않는 질문이다.
큰 동심이는 요즘 부쩍 이런 말을 한다. 엄마, A네 집은 부자야. 60평이야. 엄마, B네 집은 왜 이렇게 넓어?(78평이랬나) 엄마, C네 집은 고양이 소파만 두 개야. C는 승마도 한대. 자기 말도 있대 (내 평생 자기 말 있다는 집은 정유라 이후로 처음이다). 삐져나오려는 한숨을 어렵사리 삼키고 아이에게 내가 한 말은, 넓은 집에서 살고 싶은 거야? 그러면 나중에 동심이 돈 많이 벌여야겠네였다. 같이 인라인을 다니던 또래 아이가 최근에 미국으로 이민 갔단 소식에도 큰 동심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좋겠다. 그 친구네 부자인가 보다.
나는 내 본가가 부자인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평범했다. 딱히 부자이지도 딱히 가난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4인 가족 외벌이 전업주부가 되고 엄마가 얼마나 빠듯했을까 그 생각부터 한 걸 보면 사실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주셔서 경제적 결핍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덕분에 10-20대에 돈 걱정 없이 나를 매혹시키던 여러 분야를 원 없이 탐색할 수 있었고, 그때의 경험은 지금 내게 오아시스와도 같다. 대신, 경제관념이며 돈 공부가 많이 늦었는데, 이건 현실적이지 않은 내 성격 탓이 컸다.
나는 때늦은 돈공부가 아쉬운 입장이라 동심이들에게 나름의 경제 교육을 시도 중이다. 누구나 생활하려면, 일단은 돈을 벌 줄 알아야 하고, 돈을 불릴 줄 알아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물건을 사면 그 돈은 없어져 버리지만, 자산을 사면 그 돈이 늘어난다는 점도 간간이 강조한다. 일부러 애들 앞에서 남편이랑 경제 이슈 얘기를 나눈다. 동심이들이 뭔가를 사달라고 했을 때, 이미 지출이 많은 달이었다면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 달에 사준다. 나와는 달리 조금은 일찍 '경제'를, '경제적 결핍'에 대해 느껴봤음 했다. 가볍게.
하지만, 어디 의도대로 되더냔 말이다. 아이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럽기도 하고. 불만은커녕 안온하던 우리 가족의 터전이 갑자기 아쉬워지는 이상한 경험을 아이가 못내 하고 만다. 우리의 형편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건 중요하다. 본인의 경제적 미래를 꿈꿔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태껏 성실하고 알뜰하게 제 부모가 일궈놓은 경제적 성과가. 혹시라도 아이에게 작게 보이는 건 아닐지 씁쓸하다. 공평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는 게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당연함 속에서 누군가와의 격차가 생경해지는 순간을 아이가 잘 극복했으면 한다. 이왕이면 열등감보다는 자양분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