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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un 24. 2024

걔랑 놀지 마.

입학식 날부터 눈에 띄었다. 작은 동심이 바로 뒤에 앉은 그 아이. 덩치는 딱 8세인데 자세나 분위기가 애어른 느낌이 확 났다. 머지않아 둘은 단짝이 되었다. 작은 동심이는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그 아이 얘길 했다. 둘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다. 


자고 나면 또 만날 것을 둘은 하교길에서도 헤어지기 싫어 애틋했다. 그러다 한 번은 계획에 없이 우리집에서 두 아이가 잠시 놀게 되었다.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너희 집 넓어?" 그 친구가 사는 곳은 이 동네에서 가장 비싸고 럭셔리한 단지. 어느 날 시무룩한 표정으로 혼자 하교하는 작은 동심이에게 연유를 물으니, 그 친구가 자기 단지에 안 사니까 너랑은 안 논다고 했단다. 그래놓고는 다음 날이면 작은 동심이가 제일 좋다며 또 한껏 붙어다니곤 했다. 그 아이의 감정기복은 널을 뛰었고, 작은 동심이는 그 친구가 자기를 대해주는 방식에 따라 하굣길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각자 들른 병원에서 그 집 모녀를 마주쳤다. 아이들은 서로 반가워서 난리였다. 일전에 우리집에 온 날 우리집에 와 있음을 알리고 몇 시까지 데려다줄것인지 물으러 그 집 엄마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 카톡 프로필을 보면 이제 대충 각이 나온다. 과시욕이 상당해보였다.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은 없겠구나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엄마. 수납 직원을 정면으로 마주한 그 자세다. 부자연스럽게 오래도록. 여기서 3초간 목례한다고 내가 얼굴을 외우기라도 할까, 친구 먹자고 귀찮게라도 할까. 그냥 애들끼리 친하니까 인사 정도는 나눠야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투명인간 내지는 벽 취급을 당했다.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이후 작은 동심이는 그 친구와 잘 지내다 슬퍼하기를 반복했다. 여전히 그 친구의 감정기복과 '사는 곳'을 핑계로 한 배척이 큰 이유였다. 거기에 약속 파기가 더해졌다. 운동장에서 일주일에 2-3번 10분 남짓 뜨겁게 뛰어 노는데 그 약속을 친구가 어겼단다. 어제 한 약속을 두고 "난 너랑 그런 약속한 적 없거든. 나 OO(걔네 단지) 사는 친구랑 집에 갈 거야"라는 멘트와 함께. 작은 동심이는 처음으로 화가 많이 났다. 


하굣길에 간식 사먹는다고 꺼내는 돈이 매번 만원 짜리 또는 오만원 짜리길래 부잣집 딸래미인가보다 했다. 그래도 어른인 내가 간식을 매번 사주었더랬다. 그러면 그 아이는 말하곤 했다. "저 오늘 6만 얼마 있어요. 이 돈 다 쓰고 들어가야 돼요." 하지만, 여덟 살 나이에 물질적인 걸로 남을 판단하고 배척할 정도로 거기에 젖어 있는 느낌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잘 모를 수 있고, 분별 없이 주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서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해진 것 같다. 이건 가정교육과 가풍의 문제다. 동심이 교우관계에 처음으로 개입했다. 그 친구랑 거리를 두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놀아보라고 했다. 자기 감정대로 친구한테 함부로 대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고. 순정남을 비롯한 다른 친구들을 보라고. 이후 아이의 일상에 등장하는 친구들이 금새 다양해졌고, 동심이는 다시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단순한 단체 생활을 벗어나 인간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 생활의 첫 해. 아이는 벌써부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사진: UnsplashPossessed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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