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쑤루쑥 Dec 26. 2023

명품백이 없어요?

나는 명품백이 없다. 어릴 때는 좀 외골수에 개성파여서 브랜드와 획일적 디자인에 거부감이 들었다. 좀 크고는 그 오만함이 싫었다. 자기 회사 브랜드 로고로 뒤덮은 게 무슨 디자인이란 말인가. 내 눈에 전혀 예쁘지 않았다. 정확히 얼만지는 지금도 모른다. 하지만 기백만원을 주고 그걸 살 바에야 다른 걸 하겠다고 생각했다.


첫 출산을 하고 나서였다. 남편에게 여직원들이 말했다고 했다. 사모님 명품백 하나 사주세요!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거북했다. 내가 내 남편과 우리 아이를 낳았을 뿐이었다. 대가를 바랬을 리 없다. 축하의 선물이라면 그게 왜 명품백이어야 할까. 남편은 뭔가를 선물해주고 싶어하긴 했다. 당시 이과장이던 내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아이와 집에 매여 있을 걸 생각하고는 노트북을 바꿔주었다. 일기나 가계부만 썼지, 게임 한 번 돌린 적 없음에도 엑셀시트 하나 돌리는데 드럼통 소리가 나던 내 낡은 노트북이 못내 걸린 모양이었다. 틈틈이 컴퓨터 앞에서 또각거릴 때마다 남편이 고맙다.


지금도 명품백은 없다. 그게 나름 자랑이었다. 명품백 하나 없이도 잘 사는 나는 실속파라고. 물론, 그 자부심에 금이 가기도 했다. 이왕 돈이 없을 거라면 명품백이라도 있어야 더 나은 거 아닌가 싶었던 거다. 요즘 명품백은 재테크 수단이요, 환금성마져 겸비했으니 말이다. 나는 명품백에 쓰는 돈은 아까워도 지출을 아끼지 않은 다른 품목이 있었을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걸 오래 쓰자는 주의니까. 물론,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명품.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이다. 내가 생각하는 명품은 질좋은 재료로 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어낸 작품이다. 값비싼 공산품은 명품이 아니라 럭셔리 상품이라 이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곡된 워딩이 환상을 빚어낸다고 믿는다. 여전히 명품백은 없다. 값비싼 브랜드보다 센스 있는 패션 감각에 눈이 더 간다. 누군가의 옷장에서 명품백의 시세가 올라가는 동안, 우리집에서 나만의 취향이 묵묵히 익어간다.



사진: UnsplashLaura Chouette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지갑은 얇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