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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Dec 18. 2023

여전히 지갑은 얇지만.

주부로서의 일 말고 직업인으로서 일을 많이 한 한 해였다. 육아, 살림과 양다리를 걸치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치였다. 내가 일을 시작한 건 돈 때문이었다. 순도 백 퍼센트 생계형이랄까. 3배 치솟은 대출이자와 먼 일만 같았던 원리금 상환이 겹쳤다. 하필이면 20년 만에 금리가 최고치로 오를 게 뭐람. 어떡해 어떡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 없었다. 경단녀라는 이름표 뒤에 숨어서 마음 졸일 시간에 뭐라도 해야 했다. 가정에 보탬이 될. 그래서 시작한 거였다. 일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덕분에 가정경제에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조금 줄었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돈이었다. 때문에 며칠 심란했다. 일을 새로 구할 순 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업의 시간과 정기적인 스트레스 구간이 못내 무거웠다. 며칠을 또 스트레스받다가 결론 내렸다. 내 마음을 고쳐 먹기로.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1주일에 두 번씩 큰 동심이를 혼자 집에 두었다. 아직 집에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는 아이를. 그리고 1주일에 두 번씩 작은 동심이를 유치원 1일 종일반에 맡겼다. 그런 날이면 하원 후 애들을 먹이고 씻기고 나면 금방 잘 시간이라 사실상 아이들과 교감할 시간이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아이들 방학이면 당신 몸 돌보느라 바쁜 친정 엄마께 SOS를 쳐야 했다. 무엇보다, 내 몸이 말씀이 아니었다. 안 다니는 진료과가 없다. 한 병원에서는 내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냐고. 


내년이면 작은 동심이까지 초딩이 대열에 합류한다. 사교육을 부지런히 시키는 편이 아니어도 교육비가 또 늘 것이다. 그렇게 매년 지출이 늘 텐데, 그때마다 쪼그라드는 돈에 마음 졸인다면 내 명에 못 살지 싶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다. 아마도 또 한 번의 방학을 앞두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중딩이 되면 나는 봐주지도 않을 큰 동심이와의 소중한 방학을, 작은 동심이의 귀욤귀욤한 유딩이 타이틀을 단 마지막 방학을. 나는 일을 덜어낸 시간만큼 아이들과 지지고 볶아볼 예정이다.


경제적 불안은 여전하다. 언제고 또 커다란 불안이 엄습할지언정, 미리 짓눌리지 않기로 했다. 경제적으로 내가 해낼 수 있는 수준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여전히 지갑은 얇다. 하지만, 멘탈까지 덩달아 얇아질 필요는 없다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 밤이다. 


사진: UnsplashSkye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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