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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Feb 11. 2024

일단은 턱밑까지

단골 슈퍼에 셀프계산대가 생겼다. 그 무렵 슈퍼 직원이 줄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티가 나는 법. 빠릿빠릿하게 일 잘하는 직원 두 명만 빼고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한 명은 평일에, 다른 한 명은 주말에만 근무한다). 대신 부지런히 일하시는 사장님이 조금 더 자주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이었던 메뉴판이며 광고판들이 거대한 액정 디스플레이로 바뀐 게 먼저였다. 가게가 더 넓어졌음에도 직원이 줄었다. 키오스크 덕분이다. 어쩌다 일하는 파트타이머 아주머니 한 분만 보일 뿐, 대부분 사장님 혼자 상주한다. 이젠 어느 식당엘 가도 앉은자리에서 태블릿으로 주문하고 결제까지 하는 게 흔하다. 


슈퍼에 셀프 계산대가 생긴 이후, 나는 주구장창 거기서 계산한다. 기계 쓰는 법만 익히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매일 같이 가는 슈퍼와 달리, 어쩌다 한 번씩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할 때마다 낯설어 사장님께 아직 SOS를 요청한다. 익숙해져야 하는 건 소비자들의 몫이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트렌드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사는 게 도태되지 않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분명 인건비가 줄었을 것이다. 사람의 실수로 생긴 손해나 시행착오도 줄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로 먹고살던 사람들은? 내 일은? 내 일도 언젠간 기계가 대체할까? 남편이 하는 일은? 테슬라에서는 옷을 개는 휴머노이드를 개발했다. 독일 자동차 회사에서는 로봇을 자동차 생산 공정에 투입한다고 한다. 연봉 1억 원짜리 몫을 해내는 이 로봇은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는다. 그뿐인가. 이젠 예술마저 AI가 해낸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과연 있을까. 우리 아이들 세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직업의 세계에서 AI가 어떨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다. 아이가 희망하는 직업 리스트에서 AI가 할 수 있는 걸 걸러내야 하는 건 아닐지. 그럼 남는 게 있긴 할까. 당장 1년 후 AI의 능력이 얼마큼 급성장해있을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 된다. 일상 속에서 AI기술 덕에 각종 편의를 누린다. AI를 적절히 사용하는 균형을 아직은 고민할 수 있다. 하지만, 훌쩍 뒤쫓아오는 AI가 편리한 수준을 넘어 위협이 되는 시대. 벌써 시작된 걸 아닐까.



사진: UnsplashSteve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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