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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an 31. 2024

여유의 다른 이름

공동현관 앞에 섰다. 작은 동심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까치발을 들고 내 앞에 서 있다. 비밀번호로 문 여는 걸 자기 손으로 하려는 거다. 키가 아직 많이 작아서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불타는 굳은 의지가 뒤통수에서부터 느껴진다. 나는 급한 일이 없었다. 나 말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며 도어락류의 버튼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잘 안다. 그게 뭐라고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게 동심인 것도. 그래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이의 할머니가 서 계셨다. 저걸 지가 해보겠다고 기어코 할머니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는 저기서 버티고 섰다는 거다. 그리고 해낸 거다. 아이는 엄청 뿌듯해했고, 할머니는 민망해하셨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고 있었냐며.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아이가 야무지게 잘 하더란 말도 덧붙였다. 작은 동심이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때만 하게 해주는 편이었다. 근데 오늘은 입장을 바꿔서 조금 기다려줬을 뿐이다. 


아이를 낳고 안 낳고를 떠나서, 아이가 나쁜 짓 아닌 뭔가를 해보겠다고 바둥거리는 걸 기다리는 건 대체로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니, 자식은커녕 결혼도 안 한 젊은 청춘들이 그런 똘레랑스를 보여줄 땐 너무 감동스럽다. 유자녀일 것 같은 동년배나 어르신들이 그래주면 또 너무 고맙고 갑자기 특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기분이다. 다만, 아이에 대한 배려를 당연히 기대하지는 않는다. 타자에 대한 배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점점 닫혀가는 우리 시대가 그렇다. 그렇다 보니. 내 아이에게 발휘하기도 부족한 인내가 남의 집 아이에게까지 뻗칠 때,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마음에서 여유가 샘솟을 때. 나는 스스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조금은 뿌듯하다. 여유의 다른 이름, 그게 바로 어른인 것 같아서. 




사진: UnsplashToa Hefti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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