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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Mar 01. 2024

꽉 붙들어.

작은 동심이 입학이 얼마 안 남았다. 드디어 담임 선생님한테서 준비물 목록이 도착했다. 살 것을 표시한 준비물 목록, 담아 올 큰 비닐을 준비해서 아이들의 보물창고인 동네 문구점으로 향했다. 실내화, 파일케이스, 미니빗자루 세트, 12색 색연필 등을 사고 작은 동심이와 동네에서 장을 좀 봤다


수퍼에서는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신다. 유모차에 타고 다니던 아가가 벌써 8살이 됐냐며. 식구 모두가 좋아하는 떡을 사러 동네 떡집으로 향한다. 떡집 옆 카페에서 어닝 아래 자리를 잡은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모녀를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신다. 한참을 자애롭게. 보는 내가 다 황송할 지경으로. 우리는 열심히 떡을 골라 집으로 왔다. 


둘 다 두 손 가득이다. 우리는 각자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걸음을 재촉했다가 쉬어갔다가 장단이 제법 다채롭다. 아이의 장화발이 분주하다. 아이와 집 앞을 조금 걸어 다닌 것만으로 무거운 몸이 좀 가뿐해지는 느낌이 들 무렵. 우리는 집에 당도한다. 


그리고 다 같이. N년째 우리의 최애인 싱어게인 최근 시즌을 보며 떡을 먹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한 다리씩 동심이들이 차지하고 눕는다. 서로의 영역이 침범당할라치면 소란한 것도 잠시. 고물을 후하게 묻힌 떡을 입에 하나씩 쏙 넣어주면 불평이 쏙 들어간다. 맛있다면서. 아기 제비 둘에 어미 제비 하나가 보태니 순식간에 한 팩이 동난다.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열일할 남편이 생각난다. 이만큼의 일상이 가능하게 해 준 남편이 고맙다. 


각자 좋아하는 참가자를 응원하며 셋이 나란히 앉아 떡을 맛나게 먹는 모습. 이게 행복이지 행복이 별 건가 싶다. 행복은 너무 짧고 불행은 너무 길다. 비가 싫어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비가 없으면 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희일비하기로 결심했었다. 그것도 부지런히. 찰나의 기쁨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오늘의 행복한 풍경이 벌써 지난 시간이 되고 말았어도 마음속에 꾹꾹 눌러 새긴다. 이런 순간이 있었음을. 덕분에 이렇게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크게 한 발 장전했음을.  



사진: UnsplashZac D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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