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잤다. 오래전 마침표를 찍은 직장생활이 되살아난 밤이었다. 특히 날 힘들게 하던 요인들이 생생했다. 지금 하는 일은 당장 다음 달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직장에서 내 심신을 갈아 넣은 대가로 따박따박 받던 월급에 비할 수 없지만 많은 부분 자유로워졌구나. 결국엔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소박한 안도를 해묵은 불안이 압도해 버린 밤이었다. 악몽까지 꿨다. 편치 않은 잠자리는 만성적인 통증을 선사했고 아침에 눈떴을 땐 몸이 말씀이 아니었다.
세 번째 알람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직 아무도 눈뜨지 않은 아침. 세수를 하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둔탁한 칼질소리가 점차 경쾌해진다. 작은 동심이가 식탁에 앉자마자 반찬투정을 했지만 화내지 않고 잘 넘어갔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도 분명 몸이 심하게 찌뿌둥했다. 하지만, 잠깐의 짬이 났을 때 구태여 읽던 책을 펼쳤다. 작은 동심이가 내 옆에 찰싹 기대 자기가 읽던 책을 읽는다. 평화로움으로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작은 동심이의 첫 등교 준비를 했다. 예약해 둔 꽃다발을 찾으러 밖에 나갔다가 조금 더 컨디션을 회복한다.
오늘은 아이의 입학식. 둘째 아이라곤 하나 초등학교 입학식은 처음이었다. 큰 아이 때는 엄중했던 코로나 시국이라 모든 것이 온라인이었다. 1학년 일 년을 통틀어 등교한 날이 손에 꼽던 시절이었다. 제법 긴 시간을 아이가 지정석에서 끝까지 얌전히 잘 앉아있는 모습이 기특하다.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표정이 밝다. 반주를 한참 앞서 달리던 아이들의 애국가가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점차 안정되어 갔다.
불안, 악몽, 질병, 때로는 호르몬까지. 내 하루를 잡아먹기 위해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 너무도 많다. 무엇 하나가 도드라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컨디션이 바닥을 친다. 내 인생인지 그들의 인생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하지만, 루틴, 자제력, 평화, 그리고 바깥바람의 힘으로 오늘은 성공적으로 그들을 잘 몰아내었다. 아이가 애국가를 금방 제 박자에 맞춰 부른 것처럼. 내가 서서히 새 날을 나쁘지 않게 빚어낸 것처럼. 매일의 새 날이 결국엔 괜찮아지길 바라면서. 작은 동심이의 초등 생활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