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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ul 09. 2021

모성애와 전우애 사이

모성애는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그게 엄마의 기본 소양이자 본능인 줄 알았다. 소녀 시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방자했다. 그게 현실과 다르다는 걸 깨닫는데 30년 살짝 넘게 걸렸다. 


큰 동심이 출산 당시 진통을 다 겪어놓고 분만이 코앞인 시점에 응급 수술을 했다. 아플 것 다 아프고 배까지 짼 억울한 케이스. 진통을 겪으며 내가 아이한테 느낀 건 전우애였다. 달리 비하기도 힘든 엄청난 통증과 자극을 우리는 비교적 무사히 겪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의식은 전우애였다. 그런데 수술 후 회복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나는 남편 앞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내가 부족해서 애를 이렇게 고생시켰다고. 미친 입덧으로 열 달을 해골처럼 산 걸로 모자라 막판까지 이모양인 게 그저 미안했던 모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모성애라는 게 사실은, 덜 미안하고 싶어서, 덜 후회하고 싶어서 아이를 위하게 되는 어떤 동력이 아닐까 하고. 아이를 내 우선순위에서 한껏 높여 두고는 사실은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위안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또 가끔 생각한다. 그릇이 그다지 크지 않은 내가 나 말고 다른 생명체를 이토록 애정하고 위할 수 있다는 걸 보면 이게 모성애인건가. 동심이들을 쳐다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되는 순간이 있다. 따뜻한 감정으로 가슴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적잖이 있다. 육아가 아니라면 겪지 못했겠구나 싶은 훈풍이 가족과 집안을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모성애가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나는 모성애와 전우애 사이 어디쯤에서 엄마라 불린다. 





Photo by Norbert Hentg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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