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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Aug 03. 2021

걱정을 물리치는 법

이성을 끌어모아

나는 걱정병 환자다. 중증이다. 시작은 학창 시절이었던 것 같다. 완벽주의가 뭔지 모르던 시절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자신 있게 학습한 부분도 다시 한번 들여다봤고,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을 항상 두 자루씩 챙겼다. 학생일 땐 완벽주의가 힘들지 않았다. 내 노력을 공고히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직장 생활을 하며, 완벽주의가 걱정병을 낳기 시작했다. Plan B, Plan C를 항상 생각해야 했다. 숫자를 많이 다뤄야 했다. 실수에 관대한 일이 어디 있겠냐만, 업무의 특성상 틀리면 안 된다는 압박이 좀 있었다. 학창 시절 같으면 내 성적만 감수하면 되겠지만, 톱니바퀴처럼 업무가 서로 맞물려 있는 조직 생활에서 큰 실수는 여파가 컸다. 


다음 단계인 임신, 출산, 육아에서는 걱정병이 더 심해졌다. 일상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인데,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가 가기라도 한다면 그 대상이 동심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새가슴 엄마는 또다시 습관적으로 Plan B, Plan C를 생각하곤 했다. 


얼마 전 차를 바꿨다. 차가 좀 커졌다. 수년 째 초보 운전인 나는 걱정에 몇 날 밤을 설쳤다. 객관적으로는 살짝 더 커졌을 뿐인데, 주차장에서 그 친구를 볼 때마다 큰 산을 마주하는 듯했다. 내 차, 남의 차, 어느 기둥, 내 자존심을 긁어먹을 걱정에 2주를 사는 곳 지하 주차장에서만 연습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날이 왔다. 새 차를 몰고 나는 기계 주차를 해야 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해냈다. 심지어 평생 해 본 적 없는 기계 주차를 더 큰 차로 성공한 거다. 오예. 새 차 구겨 먹는 장면, 사고 나서 보험 처리하는 장면 등 불면의 밤 속에서 그린 숱한 악몽은 그렇게 희미해졌다.


내가 하는 걱정 100개 중 99개는 결국 안 일어날 걸 이제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도 편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건 성격 탓이다. 아, 내 성격이지만 정말 피곤하다. 문제는 동심이들이 그런 내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안 닮았으면 하는 나의 단점이 아이에게서 보일 때 실제보다 더 크게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초연한 척, 괜찮은 척 노력하는 중인데 내 연기가 아직은 어설프지 싶다.  


독 생물에 몇 년째 꽂힌 큰 동심이가 묻는다. 엄마, 독 해파리 중에 뭐뭐가 있거든. 근데 우리가 수영장에 갔는데 그게 있으면 어떡하지? 자, 동심아. 해파리는 바닷물에 살지? 민물에 못 살아. 수영장 물은 수돗물에 소독약을 푼 거야. 상수도가 수돗물이 되기까지 엄청 촘촘한 필터로 여러 번 걸러. 해파리 얼만해? 수도꼭지 통과할 수 있어? 샤워꼭지 통과할 수 있어? 아! 그러네! 동심아.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네! 그렇지 저언혀 없지! 


이쯤 되면 업보다. 내 DNA 더하기 내 걱정을 보고 산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이성을 끌어 모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음을 납득시키는 게 경험상 가장 효과가 좋았다. 끝 모를 걱정이 덮쳐올 때, 이렇게 이성을 소환하려 애쓴다. 끈질기게. 이제부터는 그렇게 걱정을 물리치는 모습도 아이가 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Photo by Hello I'm Ni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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