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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Jul 23. 2021

기댈 구석

쉬어갈 그늘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오랜만에 엄마가 오셨다.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외할머니가 오시면 엄마가 집안일할 때 잘 놀아주시고, 엄마와는 달리 화도 안 내신다. 할머니, 할머니 집 버리고 우리랑 같이 살아요. 이동구 두 마리가 친정엄마한테 수시로 건네는 말. 할머니는 내심 기분이 좋으시다.


큰 동심이 낳고 산후조리 때만 해도 엄마는 슈퍼우먼이었다. 본가 살림에 산모 케어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는 최대한 내가 보려 애썼지만, 자잘하게 병원 다닐 일이 많았고, 출산한 서울 병원에 갔다 오느라 하루를 비우기라도 하면 엄마가 신생아 케어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몇 년 사이 엄마는 많이 노쇠해지셨다. 몇 차례 수술도 받으셨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편찮으신 곳이 많다는 걸 주지 시켜, 할머니와 놀이는 쉬엄쉬엄한다.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할머니만의 휴식 시간과 운동 시간을 보장해 드리려 애쓴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딸 집에서 할머니는 요리 금지다. 우리 집 집안일은 내가 할 테니, 우리 집 와계신 동안이라도 평생 해온 집안일은 신경 끄고 손주들이랑 많이 웃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몸은 많이 약해지셨지만, 엄마는 여전히 내게 아름드리나무 같다.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날 일으키고, 엄마의 현실적 조언이 내 암흑을 걷어낸다. 그런 엄마가 오시니 벌써 소소한 일탈에 시동을 건다. 내일의 육아를 위해 무리하지 않고 일찍 자야 하건만, 드라마를 보다 늦게 잔다. 다음 날 피곤한 기색이 짙다. 또 헤롱 댈 거다. 연고 없는 곳에서의 독박 육아만 몇 년 차. 사는 곳도 멀어 아무 때나 누릴 수 없는 호사다.


명목상으로는 엄마가 피보호자이고 내가 보호자인 상황이 제법 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기댈 수 있을 때 기분이 정말 좋다. 아직은 엄마가 이 정도는 건재하다는 안도감도 있다. 엄마가 점점 자식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하는데. 엄마한테 기댈 구석을 귀신같이 파고드는 나. 다 큰 줄 았는데 고개 들어 보면 아직 부모의 그늘 안이요, 나는 가늘게 키만 자란 나무인 것 같다. 이크, 언제 정말 크지.  





Photo by Nikoline Arn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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