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쑤루쑥 Jul 26. 2021

외벌이 그리고 생계의 무게

나는 전업주부다. 사원증 휘날리던 직장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워커홀릭에 나름 일 잘하던 이 과장이었다. 큰 동심이 출산 후 우리 부부는 외벌이를 선택했다. 우리 가정의 경제적 독립을 도모하는 동시에 우리 아이를 우리 손으로 직접 키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두 가지를 다 해내고 싶었다. 


형편이 아주 여유로워서 부부 중 한쪽이 전업 주부를 하는 경우도 봤다. 일부의 사례일 거다. 우리는 대부분의 외벌이 가정이 그러하듯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벌이에 맞게 살림을 꾸리는 중이다. 


외벌이 전업주부의 삶은 지출과 관계가 깊다. 실제로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지출의 80퍼센트 정도는 내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는 동시에, 지출을 방어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이 주부에게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내 노동력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간다. 5만 원짜리 외식을 하지 않는 대신, 4만 원어치 재료를 사서 집에서 요리를 한다. 한 끼 반찬으로 3천 원짜리 나물 한 팩을 사고픈 마음을 참아내고, 2천 원어치 나물 재료를 사다 두 어끼니 먹을 수 있게 반찬을 만든다.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순간이 있다. 효율만을 따질 수 없는 게 외벌이 전업주부의 삶이기 때문이다. 


돈을 쓰기만 하는 입장인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구직 활동을 재개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전공을 살린 아르바이트는 종종 했다. 그마저도 아이가 하나일 때를 끝으로 더 이상은 없다. 경력과 연관된 업무는 기회를 다시 잡는 게 사실상 어려워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인근 식당의 점심시간 한정 홀서빙 파트타임 잡이다. 그만큼도 내가 벌어들이는 당당한 소득으로 의미 있겠지만, 시급 아르바이트한다고 피곤해서 반찬이라도 사 먹는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일이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방학일 때, 돌봄을 커버해 줄 마땅한 이가 없는 상황도 현실적 제약이다.  


남편이 요즘 부쩍 힘들어 보인다. 직장 생활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전업주부로 10년 여 세월을 보낼 동안 남편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직급에 이르렀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데다 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괜찮아 보인다 싶을 때도 단지 성취감이 스트레스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상태였을 거다. 그렇게 무난하게 보이던 나날도 회사에서나 할 법한 말들로 잠꼬대를 하던 그다. 


오랜만에 벽을 마주한 듯한 남편의 모습을 본다. 집에서도 한껏 예민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도지는 통증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힘들면 관두고 좀 쉬자고, 몇 달 마이너스 통장 써보자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맞벌이였더라면 좋겠다. 이럴 때 나는 우리가 결정한 외벌이 가정의 길에 회의가 인다. 더 미안한 건 그런 날에도 나는 장을 봐야 한다는 거다. 하필이면 오늘은 카드 결제 리셋 날. 대출 이자 금리 우대 혜택을 위해 매달 우선 한도를 채우는 남편 명의의 신용카드가 있다. 그 결제 문자를,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남편에게 연달아 날려야 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방학을 맞아 나를 불러대는 아기 제비들과 밥 씨름을 해야 하는 나나, 고단한 심신을 이끌고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이나, 좀 안쓰럽다. 정말이지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우리는 이번 파도를 무사히 뛰어넘어 잔잔한 물결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생계의 무게가 물 먹은 솜처럼 유난히 커지는 날, 아침잠을 이겨내고, 없는 솜씨로 평소보다 더 큰 정성을 담아 아침상을 차리는 걸로 남편에게 내 마음을 전해 본다. 쿤아, 스테비아 토마토도 사놨어요. 샤인 머스켓보다 비싸다. 당신 다 먹어. 온니 포유.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실수도 공평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