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쑤루쑥 May 25. 2021

뽀로로보다 맥스터핀스가 좋은 걸.

유아용 콘텐츠가 많아도 너무 많다. 새로운 게 쏟아지는 와중에도 오랜 세월 끄떡없는 뽀로로는 정말 대단하다. 갈수록 개인 주의화되는 우리네 일상에서 공동체 정신, 협동, 배려, 공감 등의 가치를 담고 있는 건 그 자체로 값진 일이다.


하지만, 나는 뽀로로가 아쉽다. 루피가 상징적이다. 루피의 언행은 친구가 아니라 ‘여자’이자 ‘엄마’에 가깝다. 한바탕 뛰놀 때에도 치마를 입고 있으며, 언제나 핑크빛을 휘감고 예쁘게 단장한 모습이다.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즐겨하고, 패티가 등장할 때 친구들의 관심이 패티에게 집중되자 질투를 한다. 기본적으로 친구들을 잘 챙기고 다정하지만 새침해서 잘 토라진다. 그런가 하면 패티는 갈 곳 없는 자기를 위해 친구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자 고마운 마음에 서슴없이 볼뽀뽀를 날린다. ‘여자는 이래야지’라는 통상적인 관념에 너무나 충실한 모습.


‘두다다쿵’이라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모험물은 신선했다. 그러나 도중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가 여주인공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며 홀딱 반하는 장면을 보고 기대를 조금 접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서 등장인물(특히 여성)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장면을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 대척점에 옥토넛과 맥스터핀스가 있다. 옥토넛의 경우, 엔지니어가 여성이고 간호사를 떠올리는 응급구조대원이 남성이다. 전통적인 성역할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말 더빙판에서 응급구조대원은 목소리마저 가냘파서 성역할을 뒤트는 느낌이 더 강하다. 사실, 특정 에피소드를 보고서야 두 캐릭터의 성별을 알게 됐을 뿐, 성별을 특별히 언급하지도 내세우지도 않으면서 이야기는 잘만 흘러간다. 그런가 하면, 바나클 대장의 면모는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에 가깝다. 거기에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바다 생물의 특징을 서사에 기가 막히게 녹여낸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이걸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직조하는 솜씨에서 세심함과 노련미가 돋보인다.


맥스터핀스는 어떨까? 주인공 닥은 흑인 혼혈인 듯하다. 피부빛은 갈색에 가깝고, 얼굴엔 주근깨가 가득하며, 통상적인 관점에서 예쁘지 않은 납작한 두상에, 팔등신도 아니다. 외모에서부터 ‘예쁨’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연스럽기 짝이 없고, 인성과 태도가 정말 훌륭하다. 또한, 아빠가 전업주부이고, 엄마가 일을 한다. 엄마의 직업은 의사. 우리 집만 해도 똑같이 교육을 받고도 집안일과 육아는 내가 ‘몰아서’ 직장일은 남편이 ‘몰아서’ 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라 해도 맞살림은 아직 요원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 해도, 어린이들한테 굳이 그것만이 정답인양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른 선택지도 있음을 알려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아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던져줄 수 있어야 좋은 콘텐츠가 아니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맥스터핀스의 최근 시즌은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이야기를 다루며, 닥의 막내 동생 입양는 스토리도 있다. 나는 입양을 할 자신이 없고, 한 주먹만 한 강아지도 무서워한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상을 발 빠르게 짚어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다뤄주는 것. 그게 내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또 다른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에피소드 자체보다 저변에 깔린 세계관, 가치관 등이 건강한 콘텐츠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게 더 교육적이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큰 틀의 생각이 건강하면 디테일은 절로 따라가게 되어 있다. 우리 집에서는 여전히 뽀로로, 옥토넛, 맥스터핀스 모두 애청한다. 다만,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 대부분 해외 작품인 게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치. 우리나라에서 만든 콘텐츠로도 만족스러운 선택지가 더욱 많아지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창작을 담아내는 큰 틀이 조금 더 넓어졌으면 한다.







Photo by Wade Momberg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에 전화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