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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May 18. 2021

'안전한 생활'이 뭐니?

‘안전한 생활’. 표어 같은 이 문구는 초등학교 교과목 이름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드려야 한다고 배웠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는 어른을 도와줄 수 없어요.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세요.”라는 말로 거절하거나,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좋다고 배운다. 개인정보관리나 성희롱도 다룬다. 예컨대, 모르는 언니(누나), 오빠(형아)가 모바일 메신저로 이름이나 집 주소 같은 걸 물어보면 가르쳐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명찰도 없다. 입학 안내 사항 중 하나가 가방 등에 이름을 쓸 땐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도록 안쪽에 쓰라는 거였다.

 

큰 동심이가 남자인 친구, 여자인 친구 구분 없이 두루 잘 어울리는 편이다.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한 여자 아이가 집에서 혼났다고 한다. 왜 여자 아이랑 안 놀고 남자 아이랑 노느냐고. 그런가 하면,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치원생 딸아이를 둔 엄마가 초등학교 고학년인 남자아이가 자기 아이랑 놀려고 하는 것에 우려는 표하는 글을 올린 걸 봤다. 아들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이자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안전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모두 필요하다. 정규 교육 과정에 트렌드를 정확하게 반영한 몇 안 되는 사례라 생각한다. 하지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세상은 충분히 안전하다고,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벌써부터 그런 걱정 할 필요 없다고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범죄는 더욱 강력해졌고 지능화되었다. 촉법소년을 대중문화에서도 다룰 만큼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대도 낮아졌으며, 학폭은 극단적인 일부의 사례가 아니라 보통 명사화되었다. 뉴스를 보노라면 이 험한 세상에서 애들을 어찌 키워야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비단 내가 부모가 되어서만이 아니다. 확실히 세상이 더 무서워졌다.


나의 경우, 위험했던 순간이 학창 시절에 몇 번 있었다.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고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무리 조심하며 산대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위험한 순간이 가까울 수 있다. 그때마다 그저 운이 좋길 바랄 수는 없다. 더욱이 큰 아이는 지근거리이긴 하지만 학교나 학원을 조금씩 혼자 다니기 시작한 터. 아직은 집 밖에서 걱정 없이 마음껏 까르륵 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이제는 경계해야 하는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클 때까지, 나는 내 균형점을 어디에 둘지 오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디 세상을 너무 위험천만한 곳으로만 인식하지 않길, 조심할 건 조심하되 졸지 말길. 거기에 더해 내게도 왔던 그 운이라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한 번쯤은 지켜주길 바라는 게 솔직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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