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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쑤루쑥 Aug 19. 2021

고마운 아저씨

큰 동심이 시력검사차 안과를 갔다. 그 안과는 기존의 주차장 부지에 건물을 새로 짓고 있어, 기계 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 기계 주차는 입차와 출차 모두 시간이 오래 걸려 대기 시간이 길다. 아이는 검사를 위해 따가운 안약을 몇 차례 넣었고, 눈동자를 키워 놓은 상태였다. 눈부심, 피로감 등이 몰려왔는지 기다리는 동안 좀 기운 없어했다.


주차장 관리 아저씨께서 다가오시더니 물으신다. 아이고, 총각이 피곤한가 보네. 대략 상황을 말씀드리자, 총각이 고생 많았네. 하며 살포시 아이를 토닥여주신다. 말투는 엄근진에 가까웠지만, 그 마음은 단팥죽처럼 걸쭉하고 짙었다.


나는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아이들과 집 밖에 나서면 아이들 단속을 좀 하는 편이다. 사실 방관하는 보호자보다 이렇게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게 관리하는 보호자가 더 많다. 다만, 어딜 가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아이들은 대부분 에너지가 넘치고 행동규범에 익숙치 않다. 아이로 인해 어떤 불편한 상황이 생겼다면, 그건 아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동행한 어른이 놓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아이와 동행했다는 이유 하나로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솔직히, 꽤 많다. 아이가 별다른 잘못을 하지 않았어도. 보호자가 혹여나 피해 갈까 미리부터 신경 쓰고 있는데도. 어떤 카페에서는 아이들 출입에 관한 안내문 하나 없이 아이들과 들어서자 거북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어떤 택시 기사님은 아이 둘 데리고 승차하자마자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다. 이 따위 똘레랑스에 나는 숱하게 한숨짓고, 눈물을 삼켰으며, 분노하곤 했다.


오늘 나는 아저씨가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다. 성인끼리였다면, 큰 경계심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스몰 톡 정도였을 거다. 아주머니는 오늘 어디가 안 좋아 오셨소. 나는 요즘 통 안 보이오와 같은. 아이를 동반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적 대화 대신 매서운 시선을 받아냈던 나는, 그 몇 마디 말에 사실 울 뻔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어느 집 아이와 나처럼 상처를 받았을 그 집 부모에게, 나도 이런 따스함을 건네주고 싶어졌다. 꼭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Photo by Nico Smi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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