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가제트형사 만능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엄마의 시간은 완전히 달라진다.
첫 애는 유치원,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부터 아이들이 하원하기 1시간 전,
오후 3시…
지은 죄도 없이 자꾸 심장이 쿵쾅거린다.
데리러 가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니까, 3시 반까지 동네 친구를 만나 하원 전 카페인 충전한다며 커피를 마시고, 알뜰하게 수다를 떨고 있으나 심장은 자꾸 쿵쾅 거리고, 안보는 척 핸드폰 시계를 보고 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혼자 집에서 성우 녹음을 하거나, 번역을 하거나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일은 언제 끝날지 정할 수 없는데도 예측 가능한 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오후 3시 앞, 뒤로 하루의 스케줄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결과물의 질, 완성도와 타협을 못하겠다며 허둥대는 동안 속절없이 시간은 또 지나가고, 집안의 모든 시계가 무소음 시계인데도 자꾸만 초침 흘러가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듯 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제일 적응이 안되는 것도 시간 관리였다.
더 이상 시간은 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아이의 컨디션과 스케줄에 따라 ‘상황에 맞춰' 주어지는 것이었다.
신생아 시절에 2~3시간에 한번씩 깨서 분유를 주던 시절이 지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지만 아이가 6살이 될 때까지도 한밤중에 쉬 마렵다고 깨면 덩달아 일어나서 화장실 보초를 서야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시간 관리가 더 쉬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아이와 함께 있으니 더 ‘창의적'으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틈을 찾아서 일을 하고 그 와중에 녹음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둘째에게 뽀로로 그려진 요쿠르트라도 쥐어주고 다시 2~3분을 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찰나의 시간에 나는 일을 할 수 있는게 감사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분 초를 쪼개며 살다가, 몇 년 후 아이들이 학생이 되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사라지고 남겨진 ‘엄마의 시간'은 공허와 혼돈으로 채워질 게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닥쳐올 ‘재앙'같은 혼란과 허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프리랜서 워킹맘인 나에게 ‘일'은 항상 절실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지금 6살인 큰 딸이 5살 6개월 쯤 되었을 때, 오랜만에 동생에게 뺏기지 않은 엄마와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꽁냥꽁냥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빨리 잠기운이 오길 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는데
“엄마, 오늘 나쁜 일 없었어?”
“응? 나쁜 일? 별일 없었냐구?”
“응, 오늘은 일하면서 힘들지 않았어?”
(며칠 전, 일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속상한 날 큰 애에게 주저리주저리 말한게 생각난 모양이다.)
“응, 오늘은 별 일 없었어. 엄마 오늘 잘 지냈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엄마의 안부를 물어주는 아이의 말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 울컥하려는 찰나에
“엄마, 엄마도 일 하니까 힘들겠다. 그러면 일 안하고 그냥 쉬는게 좋지? 일 안하고 그냥 노는거.”
아이가 이렇게 물어보자마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정색을 하고 큰 소리로 선언을 해버렸다.
갑자기 정색을 한 엄마의 어조에 당황한 큰 딸은 엄마가 ‘노는게 왜 안좋은지'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우리 엄마는 일하는걸 엄청 좋아하나보다'라고 짐작하고 꿈나라로 갔다.
늘 엄마와 자고 싶지만 2살 터울의 동생이 너무 울어서 어쩔수 없이 엄마를 양보하고 아빠랑 자다가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누워 있으니 이 기회에 엄마에게 더 사랑받고 싶었는지, 그날 따라 엄마의 하루를 깊이 ‘헤아려'보게 된 큰 딸의 상냥한 이벤트는 엄마의 과도한 ‘직업의식선언'으로 끝나버렸다.
프리랜서가 된 지 10년, 엄마가 된지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마'로써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할 때에도 그만큼 생기는 커리어의 공백에 늘 불안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로써만 존재 할 수 없는, ‘자의식'이 너무나 강한, 그만큼 ‘모성이 부족한' 엄마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 MC를 맡은 날 처럼, 가기 전 아이 둘의 먹거리, 입을거리, 놀거리 등등을 챙겨놓고 나설 때, 옷,구두 가방, 메이크업 가방 내 짐까지 챙겨 나올 때, 열 개쯤 나오는 ‘가제트 형사의 팔'이 너무나 절실할 때에도, 일하지 않는 엄마로 존재하고 싶은 생각이 단 1도 안들었다.
늘 바쁘고 정신없고, 아이들에게도 ‘빨리 빨리'를 연신 외쳐대며 하루를 ‘쳐내기' 바쁜 날들의 연속이지만 모성이 좀 부족하더라도 나는 늘 ‘열심히' 내 몫을 해내는 ‘엄마'이고 싶었다.
지금 우리 딸들은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느라 매일 저렇게 바쁜지, 평소엔 잘 안 보여주는 TV를 틀어주고 방에 문닫고 들어가서 ‘마이크'와 ‘누가 와서 먹었지' 컴퓨터(둘째가 3살일 때, 엄마 컴퓨터 Mac Book에 새겨진 애플 로고를 보고는 외친 말이다.)와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당최 알 수 없겠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자신의 일을 사랑한 엄마'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전쟁 같은 육아의 폭풍 한가운데, 조각배 하나 타고 열심히 노 저어서 잠깐이라도 자신의 몫을 해내고 다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폭풍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성장하는 엄마로 기억해 주길.
자신들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고 일구는 ‘사회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시간의 씨앗을 심었다는 걸 먼 훗날에라도 기억해주길.
그래서
쿵쾅쿵쾅…
다시, 심장이 뛰는 시간이 돌아왔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
‘꿈꾸는 엄마'가 아이들을 안아주는 엄마가 될 시간이다.
*사진출처: 넷플릭스 '워킹맘 다이어리' 포스터
*클레어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aEPwppKU6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