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탐닉의 힘 04화

어둠 속을 걸어가는 힘: bouncing back

영화 하얼빈을 본 후

by Claire Kim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영화 하얼빈의 마지막 대사)


많이 망설이다 영화 하얼빈을 보러갔다. 윤씨가 대통령이 된 이후 역사물, 특히나 이순신같은 영웅을 주제로 한 영화는 보지 않았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국난은 많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그렇게나 많은 피를 뿌리고도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떤 역사물이든 '그래서 결국 이 꼴을 보려고 그렇게 희생했단말인가' 로 귀결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시국에 안중근이라니...


오히려 안중근을 주제로 하고도 지루하다, 너무 잔잔하다 라는 평이 있어서 영화를 보러갈 수 있었다.


차라리 지루하길 바랐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심장이 쪼여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 전반부에는 안중근 장군(독립군의 참모중장인 장군으로 그의 모습을 기리고 싶어서, '의사'가 아닌 '장군'으로 칭함)이 신아산 전투에서 힘겹게 승리한 후 풀어 준 일본군포로 때문에 당한 역습으로 수 많은 의군과 동료들을 잃고, 혼자서 처절하게 뼈를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 속 얼어버린 두만강을 맨 몸으로 건너 다시 독립군에 합류하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그가 혹한의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안가로 돌아왔을 때 안중근의 피부는 외투의 천조각이 살속으로 들어와 엉겨붙은 상태였다고 했다. CG가 아닌 실제 꽁꽁 언 강바닥위를 처절하게 걸어가는 장면은 보는 내내 안중근장군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을 그 찬바람이 내 폐부로 침습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오판으로 수많은 동료들을 죽게 한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끝까지 살아서 돌아 올 결심을 한 것은 죽은 동료들의 몫까지, 자신이 꼭 해야할 일이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는, 독립군내에서 위태해진 입지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거사를 향해 꿋꿋이 걸어간다. 지도를 펴놓고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로 이동하는 동선을 가리킬 때 그의 왼쪽 넷째 손가락은 짧아져 있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그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만 존재할 것 같은 영웅 안중근의 뼈아픈 실패, 고뇌, 처절한 외로움에 주목한다. 그의 외로운 삶이 하얼빈에서 거사를 성공시킨 후 결국 사형대에 오른 것으로 끝이 났을 때 나는, 마지막 대사의 무게에 압도되어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없었다.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가장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은, 안중근 장군의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원천이었다. 바로 옆에서 목숨을 지켜주던 동지들마저 독립이 되겠냐고 의문을 품으며 변절하고 떠나가는데, 자신을 삼켜버릴 것 같은 혹독한 두만강의 추위에서도 결연히 그 아득한 강을 건너, 독립을 이루기 위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다시 삶을 되찾는 힘을 resilience라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세계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회복탄성력'이라 불리던 'resilience', 이 단어에 열광했다. resilience는 bouncing back이라고도 쓰인다. 스프링이나 용수철이 다시 돌아가는 힘은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 생긴다. 억누르고, 짓누르고, 틀어막고, 압제하는 힘의 무게만큼 다시 튀어 오른다. 안중근 장군과, 이름도 빛도 없이 하늘의 별이 된 독립군들은 그들을 억누른만큼 다시 튀어 올랐다.




영화 하얼빈을 보며, 새롭게 곱씹은 단어는 resilience, bouncing back이다. 일제의 온갖 악행과 억누름에 항거한 독립군들만큼 resilience가 잘 맞는 이들이 있을까.. 그들 에게는 '회복 탄성력'이란 번역은 너무 가볍고 말랑해서, 내겐 '항거하는 힘'으로 다가온다. 억누른만큼, 다시 돌아오는 저력. 안중근 장군이나 독립군들에게 그 힘의 원천은 자신 보다 먼저 목숨을 바친 동지들의 희생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총과 칼을 맞고 고문당한 동지들의 눈빛을 잊지 않은 제 2의 안중근, 제 3의 안중근이 나타나 결국은 독립을 이룬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역사나 시대극을 보지 않았던 이유는, 사람 목숨이 너무나 허무하고 무가치하게 희생되는 역사적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땅의 집단적 희생에 대한 부채의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지 못한 정의, 자유 인간다운 가치 등등. 과거의 희생이 아무런 진보도, 발전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제일 괴로웠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영화 '하얼빈'속 안중근 장군도, 한강 작가가 말한 80년대의 그들도,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앞서 불을 밝힌 누군가를 따라, 뒤따르던 이가 불을 지피고, 그 불을 나눠 들고, 어둠 속을 함께 걷자 했던 이들이 지금의 나에게, 우리에게 찾아 왔다.


이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모이면, 불을 들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


2024년 12월 부터, 새해가 된 2025년에 형형색색의 불을 든 그들이 광장에 모였다.


1905년에, 1980년에 불을 밝혔던 그들이 2024년에 다시 찾아 와, '더디 가면 더디 가는 대로', '빨리 가면 빨리 가는대로', 올해가 아니면, 내년에, 내년이 아니면 내 후년에 이루고자 했던 세상으로 우릴 이끌고 있다.


쏟아지는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세상의 모든 악과 비상식이 다 튀어 나온 것 같은 현실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부모님이 지켜낸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응원봉을 들고 차디 찬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눈보라와 한몸이 된 그들을 보면, 과거의 그들이 다시 돌아와 함께 이 어둠 속을 함께 걷는 다고 느껴진다.


무엇이 우리를 끊임없이 항거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끊임없이 돌아오게 하는가?


제일 먼저 불을 밝혔던 과거의 그들이 한줌의 재로 사라지지 않고 어둠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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