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as a love language
음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자식 사랑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엄마들에게 '밥'은 더더군다나 중요한 '과업'이다. 내 생각에 단군할아버지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는 집안에 돈이 많으나 가난하나 상관없이 끼니를 해대고 간식을 챙겨주는 행위가 그 어떤 것 보다 자식에게 애정을 진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된 듯하다.
영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다.
Food is my love language : 음식은, 제게 사랑의 언어예요.
음식을 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란 뜻의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한국인만큼 음식, 끼니에 집착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음식을 통해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보편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음식은 사랑의 언어이다. 내가 2살도 되기 전에 엄마는 늘 생업에 매여서 집에 계시지 않았고 밤늦게야 기어 다니는 나와, 엄마가 보고 싶어 울던 오빠를 다독여서 지친 몸으로 손수 무언가를 해 먹이셨던 것 같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달을 시킬 수도 없고, 사 먹는 건 비싸서 집에 있는 식자재로 먹을 만한 것을 어떻게든 '창조'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엄마가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서면 "출출하면 '김치 밥국'을 끓여 줄까?" 물어보시던 기억이 난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 말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 중에 그나마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재료로 뚝딱 만드는, 비주얼은 좀 꿀꿀이 죽 같지만 나름 건강식이었던 엄마만의 김치밥국.
멸치 다싯물을 우려내서, 찬밥과 신김치를 끓이다 계란을 풀어넣고 대파를 썰어 넣어서 끓인 그 밥국. 배가 고프니 허겁지겁 입안에 밀어 넣다가, 1차는 뜨거워서 혀를 데었을 때, 2차는 엄마가 귀찮아서 건져내지 않은 커다란 멸치가 입안에 씹힐 때 나는 오만상을 다 쓰며 엄마한테 구시렁댔다.
뭐 하나, 제대로 입에 씹히는 건더기도 없고 그저 뜨겁고 시고, 벌건 밥국이었지만 먹고 나면 속이 그렇게 든든했었다.
그 뒤로 몇 십 년이 흘러,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당장 내일 내야 하는 학비는 없어도 집에 있는 가장 건강한 식재료로 어떻게든 뭐라도 만들어 먹이시던 엄마의 유전자가 나에게 시뻘겋게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낳은 두 딸이 소문난 편식, 까탈스러운 입맛의 소유자란 것이다.
첫째는, 태어났을 때부터 먹는 것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오감이 다 예민한 아이여서 돌까지 눕혀 재워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밤새도록 우느라 자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러니 먹는 것은 오죽했겠는가. 첫째라 모든 것이 서툴고 걱정 투성이인 초보엄마였던 나는, 영유아 검진을 갈 때마다 몸무게, 키가 미달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무엇을 먹어야' 초보 엄마 성적을 끌어올릴 것인가 집착했었다. 혹시, 내가 한 음식이 맛이 없나 싶어 좌절한 적도 있었으나 아기 주먹밥을 만들어 우리 애들 노는 놀이터에 가져가서 먹이는데, 내 새끼들은 안 오고, 동네 애들이 냄새 맡고 와서 다 먹고 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다닐 때도, 같은 원에 다니는 엄마들 다 불러 모아서 닭갈비 해서 먹이고, 와인 한잔씩 하며 지냈는데 다들 내가 한 음식들을 좋아했다.
내가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첫 아이 잘 해먹일 자신이 지구 대기권을 뚫을 기세였는데 문제는 아이가 먹질 않으니, 집에서 카스텔라도 만들고, 잘 먹는다는 치즈 과자 등등 온갖 것을 다 실험하며 키웠다. 주변에서는 크면 다 나아진다고, 조금씩 다 좋아진다고 조언을 해줬지만 아이가 거부할수록 나는 내 안의 실망과 좌절의 나무를 키우며, 결국은 밥상을 차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분노의 원인은, 그동안 애써 만들고 차린 이유식, 유아식, 밥, 간식 온갖 것들이 매번 '틀렸다', 또는 '잘못됐다'로 귀결되면서 아이를 키우는 내 인생이, 엄마로서의 자아가 모두 실패로 낙인찍힌 느낌 때문이었다.
타고난 기질과 입맛이 그런 것을 굳이 내 탓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나는 음식 알레르기가 수백 가지가 넘는 서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처럼 쿨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지금 내 딸들은 11살, 9살을 앞두고 있으니 나의 이 '밥 해먹이기'전쟁도 십 년이 넘은 셈이다. 커가면서 편식은 조금씩 좋아졌지만, 두 딸은 좋아하는 음식도 정 반대라서 4 식구가 외식을 한번 하기도 힘들다. 집에서 저녁을 못해먹을 상황이면 죽어도 스파게티를 안 먹겠다는 둘째 때문에 첫째가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는 동안, 둘째는 유튜브를 보고, 나는 슈퍼에 들러 고등어를 사서 결국 둘째 먹을 밥상을 또 차리고 치우면서 화가 벌컥벌컥 나고, 밥상을 차린 끝은 파국일 때가 많았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도 먹는 것 때문에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내 육아 스트레스의 8할은 잘 먹지 않는 아이들과, '잘 해먹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내 모성과의 충돌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가 학교를 들어가면서 치킨, 돈가스, 짜장면 이런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자 나도 밥 해 먹이는 스트레스를 버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먹였다. 그랬더니, 소화가 안 돼서 배탈이 나고 결국 병원 엔딩이라서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굶기지도, 편하게 간편식만 먹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그나마 커가면서 조금씩 선택지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외식메뉴를 정하는 것도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도 솔직히 '형벌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설상가상,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집에서 '밥'해서 먹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일이 되어버렸다. 동네 김밥 맛집에서 김밥을 사 먹이기도 하고, 실패 확률 없는 생고기 (우리 애들은 비계를 먹으면, 죽는 줄 안다. 오로지 살코기만 먹는다. 그래서 불고기감 한우, 지방 없는 돼지 앞다리살은 냉장고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라면도 먹이지만 여전히 아침에 눈뜨면 '오늘은 뭘 해먹이나'가 나에겐 가장 큰 숙제이자 괴로움이다.
그러다, 최근 몇 달안에 식구 4명 중 3.5명이 동의하는 식자재가 생겼다. 바로 오징어다. 남편에게는 무 넣고, 콩나물 넣고 약간 칼칼하게 끓인 오징어국이 해외 출장 갔다 오면 먹는 '소울 푸드'이고, 고기, 튀김류 안 좋아하고 오징어, 문어등을 좋아하는 둘째는 아빠의 오징어국에서 오징어만 건져 먹는다. 첫째는 국은 안 먹지만, 오징어 넣은 파전은 먹는다.
그래서 동네 마트를 돌면서, 식자재를 매의 눈으로 훑을 때 신선한 '오징어' 확보는 나에게 중요한 일정이다. 기후변화로 바다온도가 올라가면서 '금징어'가 돼버렸지만, 가끔 세일할 때 칠레산 아닌, 동해산 금징어가 눈에 띄면 그날 저녁 메뉴는 무조건 오징어 국이다.
오징어가 중요한 식자재가 되면서, 오징어 내장을 손질하고 다리 빨판에 붙은 이물질을 박박 긁어내고 하는 등의 재료 준비 과정이 나에겐 꽤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비린내는 둘째 치고, 오징어 속을 갈라 내장을 뜯어내고 입안의 이빨을 꺼내고, 먹물을 피해 조심조심 눈을 뜯어내고 하는 과정이 매번 유쾌하진 않다. 절대로. 오징어 내장을 뜯어내며 혼잣말을 한다. '입맛 까다로운 3명을 위해 내가 이렇게 하는 수고를 누가 알아줄까...', '안 남기고 다 먹기나 하면 양반이다.' 등등...
참 안 어울리는 장면이지만, 싱크대 수체구멍에 빠진 오징어 내장을 건져내면서(오만상을 찌푸리며), 나는 저 표현을 떠올렸다.
Food is my love language.
음식을 해서 먹이는 게, 제 아이들에게 하는 사랑의 표현이에요.
사 먹는 것이나, 해서 먹이는 것이나 드는 돈이 비슷할 만큼 오른 물가이지만, 조금이라도 신선하고 건강한 식자재를 골라골라, 세일하는 걸 집어 들었을 때는 어디 상하거나 시든 부분이 없나 검열하듯이 살피고, 오징어, 새우, 생선등을 손질하고 나면 밤에 잠들 때까지 손톱밑에 비린내가 나는 듯하고, 먹고 나서 버리는 게 더 많다 해도 뒤처리까지 다 해야 하는 이 '형벌'같은 과정이 사랑의 표현이란 말인가?
어떠한 기똥찬 대안도, 무릎을 탁 치는 육아 조언도 먹히지 않는 이 상황에 나는, 이 '형벌'같은 엄마 노릇을 스스로 뒤집어쓰고 저녁이 되기 전에 동네 마트에서 매의 눈으로 식자재를 사냥하는 나 자신을 좀 다른 시선으로 봐주기로 했다.
'나는, 위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엄마이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들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일을, 왜 자진해서 하고 있는가? 조금이라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닌가? 세상 까다로운 두 딸이 나에게 온 것은, 내가 내 그릇만큼 품어줄 수 있으니까 온 것이겠지. 아이들이 내게 주는 성적표는, '잘 먹고', '안 먹고'로 결정되는 게 아닐 것이다.'
오늘도, 큰 애는 안 먹어본 메뉴를 내놓자 킁킁 냄새부터 맡는다. 어떤 음식이든, 일단 냄새부터 맡고 보는 큰애가 내가 차린 밥상에서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엄마가 독약 탔어? 냄새는 왜 맡아?"라고 모진 말을 뱉고 나면, 밥상 분위기는 깽판이 나고 나는 이미 밥 맛이 뚝 떨어져서 거의 먹질 못했다.
내가,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기로 한 뒤부터 큰 애가 냄새를 맡는 걸 보니, 그동안 저 예민한 애를 키우느라 내가 얼마큼 눈물과 땀을 흘렸었나... 싶다. 큰 애는 11살이 되기까지 어떤 것이든, 지금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이 나를 해칠 것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냄새부터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혀에 들어온 음식물이 미각에서 탈락하면 뱉었을 것이다.
11살이 되어도 타고난 기질이 저런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춰서 대강 대강, 무난하게 키우려고 했으니 그동안 썩어 난 내 속과 눈물이 새삼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한 음식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 아니겠지... 그러고 만다.
오늘은, 오징어 비린내가 지긋지긋해서 오징어국과 젤 반대 스펙트럼에 서 있을 것 같은 메뉴를 만들었다. 큰애가 절대 안 먹는 치즈를 왕창 넣은 시금치 프리타타. 남해 섬초와, 체다 모차렐라 치즈를 아낌없이 투하한 프리타타를 만들었는데 저 고운 빛깔의 음식을 우리 아이들은 손도 대지 않을 것이고, 치즈 먹으면 배가 아픈 남편도 먹지 않을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졌다.
그래도 이내, 씩씩하게 입안 가득 밀어 넣고, 남해 섬초의 두꺼운 잎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단맛을 느껴본다.
역시, 치즈는 아낌없이 털어 넣어야 제맛이다.
식구들이 안 먹는, 나만의 시금치 프리타타는 내가 나를 아껴주는 언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