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부모님과 나는 여행이란 걸 다녀본 적이 없다. 아, 어릴 때 미국에 살고 계신 이모를 만나러 엄마와 둘이 미국에 다녀온 게 여행이라면 여행이었으나, 흐음. 그것도 여행이라기엔 조금 애매한 것이 미국에서도 관광을 하기보단 이모집에서 지내다 왔을 뿐이라서. 미국 방문이라 하면 더 맞을 듯하다.
그렇게 치면 제주도도 '방문'한 적이 있다. IMF시절, 아빠가 잠시 제주도로 발령을 받으셔서 혼자 그곳에서 지내신 적이 있는데 여름방학 때 제주도에 아빠를 만나러 갔었다. 그러나 아빠는 일하셔야 했고, 엄마도 모르는 곳을 나까지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구경하실 성격은 아니셨다. 심지어 대부분의 날들이 비가 쏟아지거나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책이나 읽곤 했다.
이렇듯 딱히 사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을 관광하려는 목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신혼여행부터 시작해서 시부모님 따라서도 여행을 가게 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와 함께 셋이서 여행을 다니게 된 것이다.
다른 여행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최근 1박을 하고 돌아온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의 첫 캠핑을.
워낙 우리 부부 둘 다 불편한 여행을 싫어해서 캠핑 장비도 하나 없는데, 남편이 아들에게 '캠핑'을 체험시켜주고 싶었는지 몸만 가면 되는 캠핑인 글램핑장을 예약했더라.
요 며칠 장마에, 태풍도 지나가서 비가 계속 왔다. 우리가 예약한 글램핑 장소는 가평이었는데, 가평에서 많은 빗물에 도로나 기찻길이 유실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걱정이 됐음에도 글램핑장 측에서 사전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없길래 거긴 괜찮은가 보다 하고 연락도 안 해보고 출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대책 없네.
맑진 않았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기며 가평에 진입하니, 도로 곳곳이 진흙으로 덮여있고 길옆으로 보이는 물살이 매우 거센 것이 아무래도 심상찮았다. 글램핑장 옆으로 계곡이 있어 그곳에서 놀면 좋겠다 싶어서 거기로 예약한 거였는데 말이다. 도착해서 보니 계곡물에 발 담그는 순간 천국으로 순간이동 할 것 같아서 계곡에서 노는 건 포기했다. 대신 빗물이 담긴 야외수영장에서 놀다가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숯에 고기도 구워 먹고, 타고 남은 숯불에 마시멜로도 구워 먹었는데, 이런.
처음 맛 본 구운 마시멜로!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이번에 캠핑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이 구운 마시멜로 때문이다. 한 입 먹고 나서 하마터면, 좀비처럼 남은 마시멜로 봉지에 뛰어들어 달라붙을 뻔했던 것이다. 영화 같은 데서 왜들 그렇게 불에다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지 그 이유를 40살 넘은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씻는 것도, 자는 것도 불편하고, 놀거리도 딱히 없지만 캠핑을 다시 가고 싶어 진다면 이 구운 마시멜로 때문이리라. 캠핑의 꽃은, 숯에 구운 돼지고기 바비큐도,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즐길 수 있던 캠프파이어도 아닌 구운 마시멜로라고 당당하게 외칠 테다.
내가 당뇨환자만 아니었어도 남은 그거 다 내 거였는데. 아쉬움에 입술만 빨며 남은 마시멜로를 정리하는 남편의 손을 지켜봤더랬다. 다행인 건 아들은 더 달라고 떼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랬다면 아마도 나까지 같이 떼쓸 뻔했으니 말이다.
평평하지 못한 맨바닥에서 자서 힘들었다는 남편 때문에 캠핑을 다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구운 마시멜로는 언젠가 또 먹고 싶다. 나중에 펜션에서 또 굽게 해 주겠다고는 했는데 과연 고소하고 부드럽게 사르르 녹던 바로 그 맛이 날까? 만약에 그 맛이 안 난다면 그건, 한여름밤의 캠핑빨이었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