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세포 한 조각은, 제거될 위기에 놓인 갑상선에서 도망쳐 나와 오른쪽 쇄골아래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음. 그렇다. 암세포가 전이되었다. 그놈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한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치료 예약을 잡았다. 농축된 방사성물질을 먹어야 한단다. 미래의 생명력을 끌어다가 현재의 삶을 연명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쩌겠어. 당장 살고 봐야지.
치료 전 요오드가 절제된 식단으로 바꾸는 게 첫 번째 난관이었다. 그전엔 인식을 못하고 살았는데 천연 소금에 요오드가 많은 모양이었다. 간장이며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죄다 무요오드소금을 사용한 걸로 바꿔야 했다. 인터넷에 갑상선암 치료 전문 반찬가게가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사실 그것도 입맛이 없어서 잘 안 넘어갔다.
본격적인 식단관리는 2주간 진행됐는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었다. 식욕이 없어서 굶거나,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그래놀라와 샐러드, 찐 단호박 따위를 먹고 2주를 버텼더니 세상이 핑핑 도는 것이, 입원하던 날엔 소설 속 가녀린 여주인공이 된듯한 기분도 잠깐 들었다. 이제 보니 제대로 다이어트 식단이었네. 실제로 몸무게도 줄었었고.
어쨌든 비틀거리면서 입원을 했다. 방사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특수처리가 된 병실이어서 오롯이 혼자 하루동안 지내야 했다. 뭐, 알약 같은 방사성물질을 삼키는 것도, 침샘에 방사능이 고이지 않도록 계속 침이 나오도록 신 음식을 먹어줘야 하는 것도 견딜만했다. 그냥, 그때 내 정신을 흔들었던 것은 얼마 전 들었던 난소암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난소에도 6.8센티미터 정도의 혹이 붙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하니 이건 꼭, 암이 확정인 것만 같았다. 수술을 하고 나서야 그게 암덩이인지 혹덩이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그래서 제거 수술날짜도 잡고, 혹여나 복부에 전이가 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MRI도 찍었다. 전이가 되었으면 개복 수술을, 전이가 되지 않았으면 복강경 수술을 하기로 했다.
갑상선암 수술한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것 참. 내 작은 꼬맹이가 어른이 되어 여자친구를 데려와 소개시켜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장 이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것도 못 보고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거다. 마치 영화처럼, 나 죽으면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친정엄마께 케어를 부탁해 달라고 남편에게 말을 전해놓기도 하고, 그나마 살이 빠졌을 때 영정사진을 찍어놔야 하나 고민도 했다.
방사능이 어린아이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퇴원 후 약 2주간 홀로 지냈다. 난소의 혹만 아니었어도 '나는 자유부인이다!'를 외치며 신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혼자 버텨야 했던 그 시기는 내게, 숨을 쉬고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공황장애를 안겨주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공원을 걸어도, 폰게임에 매달리며 생각을 딴 데로 돌려봐도 어쩔 수 없이, 순식간에 밀려온 파도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