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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홍차 Aug 12. 2024

우리집 반려물고기에 대하여.

따뜻한 에세이 한 잔. 일곱번째.

 우리 가족이었던 반려견 쵸파를 하늘로 떠나보낸 후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남편은 다시는 네발 달린 동물은 키울 수 없겠다고 선언했고, 나는 무언가 마음을 쏟을 다른 곳이 필요했다. 마침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식물은 키우는 족족 죽어버렸으니, 동물에, 네발 달리지 않고, 우리 작은 집에서도 키울 만큼 작은, 말하자면 물고기.


 하지만 물고기를 키우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게으름을 알고 있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난 굴하지 않고 내 게으름을 안고도 키울 수 있는 물고기를 찾아내었고, 남편을 설득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물고기를 키움으로써 아이의 정서 발달을 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물고기의 종류와, 서식환경, 그에 따라 내 게으름으로도 관리할 수 있을법한, 환수와 여과가 필요없다는 무여과항에 대한 이론과 방법! 재료까지! 보고서를 제출하고서 모처럼 학교에 과제 제출한 것마냥 두근거렸다. 가장 중요한 재료비를 빼먹었다고 한소리 들었지만 결론은 내가 설득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야호!


 내 타겟이 된 물고기는 '베타'라는 물고기이다.


 그렇다. 투명한 일회용 컵에 한마리씩 담겨있는 그 물고기. 헤엄치면 드레스 입고 춤추는 것처럼 지느러미가 아름답게 흔들리는 그 물고기다.


 베타는 수류가 있는 곳보다 흐름이 없는 곳을 더 좋아한다고 하고, 가끔 수면으로 올라와, 뻐끔, 폐호흡을 하기도 한다 하니, 산소발생기가 굳이 없어도 되었다. 열대어라서 히터만 있으면 잘 살아가는 강한 물고기! 생긴 것도 예쁜 데다 생명력도 강하다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었다.


 적당한 크기의 어항을 준비하고, 일반 배양토를 깔아준다. 무환수항의 핵심인 혐기성 박테리아들의 번식을 위해 산소를 최소화하려면 흙에 물을 섞어주어야 한다. 그 위에 어항용 소일을 뿌려준다. 그리고 수초를 꽤 많이 심어준다. 예쁜 것보다는, 진짜 생태계를 꾸며준다는 생각으로 마구마구 심어준다. 이때 검역된 수초를 심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달팽이들이 따라와 어항이 달팽이 천국이 된다. 그리고 비닐을 덮어주고 물을 붓는다. 베타는 열대어기 때문에 히터도 달아준다. 그럼 어항세팅은 끝이다.



 글로 써놓으니 몇 줄의 간단한 작업이지만, 하다 보면 땀을 뻘뻘 흘리게 되는 귀찮은 작업이다. 그러나 물에 둥둥 떠오르는 부유물들을 건져내 주고 베타를 넣어주면 그 귀찮음이 뿌듯함으로 바뀐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베타는 하늘하늘한 외모와 달리 성격이 사납다. 자기 영역에 대한 인식도 확실하기 때문에 수컷은 어항 하나당 한 마리씩 키우는 것이 정석이다. 합사를 하게 되면 센 녀석이 다른 녀석의 지느러미를 뜯어 냠냠하는 모습을 보게 되므로 합사는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지금 네 마리의 베타를 키우는데 어항이 네 개인 것이다.


 '물멍'이라는 말이 있다. 이 네 개의 어항 앞에 앉아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베타들을 바라보게 된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잠깐이라도 베타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어항을 관리하는데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이 정도로 볼 맛이 있으면 나는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네 마리 각자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니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마치 한 명 한 명 각자 다른 인간의 모습처럼. 부디 내가 꾸며준 작은 세상에서 편안히 오래오래 살다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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