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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법을 위한 책<단단한 독서>

현명한 독자가 되기 위해



독법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리는 에밀 파게의 <단단한 독서>. <독서술>이라는 간단명료한 제목으로 1959년에 국내에 첫 소개가 됐다는 이 책을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하게 된 나. 지금 읽어도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 걸 보면, 이 책은 확실히 (내겐) 좋은 작품이다.


이 책은 장르별 독서기술법을 정리한다. 장르를 아우르는 '모든 장르'에 대한 독법으로는 '느리게 읽기'와 '거듭 읽기'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의 독법이 있겠지만, 느리게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를 짚어가며' 읽고 또 읽는다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한 '진정한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밝힌 독서법은 어쩌면 우리가 관념적으론 다 알고 있는 구태의연한 사실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왜'라는 타당한 이유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장르 뿐만 아니라 작가별 독법도 정리했다는 점이다. 시인이나 철학자는 물론, 난해한 작가와 비평가, 나아가 '조악한 작가'의 작품(?)을 읽는 방법까지 설명한다. 그로 인해 '모든 작가와 책들에 의미가 부여'된다.


느리게, 그리고 거듭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책인 만큼 자연스레 그가 제안하는 독법에 따라 꼼꼼히 읽어내려간 책. 다 읽은 후, 인상깊었던 부분은 다시 읽었으며 특히, 최근에 더해진 '시인 읽기'의 경우에는 소개된 시들을 저자가 제안한 호흡법에 맞춰 읽느라 장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 책... 독자들을 뜨끔하게 만드는 '일침의 대목'들이 풍성하다. 독자들의 이견을 먼저 간파하고 그에 대한 답까지 안내한다(그래서 독서 내내 에밀 파게에 대한 존경이 깊어져갔다).


내가 이 책을 읽고자 결심한 이유는, 독서와 영화, 그리고 공연과 전시 등의 문화활동을 좋아하지만 그저 흐름대로만 즐겨왔던 걸 반성해(물론, 이것 또한 좋은 방법이었다 내겐), 모든 활동들의 '근간'부터 찾고 정리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래서 요즘엔 '책에 대한 책' '자아에 대한 정의' 등에 대한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단단한 독서>는 제목처럼 독서에 대한 근간을 잡아주는 책이다. 독서가들을 위한 책, 이미 잘 해나가고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더욱 단단한 독서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문체는 냉소적이다 못해, 까칠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대담하고도 직설적인 문체는 저자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모든 것들을 말해준다. 독법 설명을 위한 니체, 라신, 볼테르, 파스칼, 위고, 괴테 등의 작품들을 분석해낸 이 책은 기대 이상의 배움거리를 선사한다. 한편, 독법 뿐 아니라 작법(作法)에 대한 조언도 포함돼 있다.



[책 속의 좋은 글귀]


좌우지간 우선 보라. 보는 습관을 들이자. 본다는 것을 좋은 연극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 살아 숨 쉬는 작품과  생명이 없는 작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전자는 볼 수 있고, 후자는 그럴 수 없다. 좋은 극작가가 작품을 봐 가면서 집필하듯이, 좋은 독자는 작품을 눈앞에 세워 두고서 읽어 내려간다. 

- p. 88


성찰의 즐거움, 우리가 극작가를 읽으며 얻는 이 활력 넘치는 즐거움은 작가 자신이 작품에 무엇을 담으려 했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 p. 104


우리는 구두점이 잘 찍힌 판본으로 시를 읽어야 하며, 구두점을 꼼꼼히 살펴야만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운율과 소리의 균형이라는 요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운율이 맞는다는 말은 특정 길이의 잘 만든 문장에서 각각의 부분들이 정확히 균형을 이루고, 한 사람의 몸에 사지가 적절한 비율로 잘 붙어 있는 것같이, 귀와 눈을 만족하게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뛰어난 운율의 문장이란 맵시 있게 걷는 여인과도 같다. 

- p. 111


그렇다고 바보들의 책을 완전히 멀리할 필요도 없다. 우선 여기에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알다시피 카타르시스는 해악을 끼칠 감정에 빠져들 위험 없이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정화하므로, 우리 안에 더는 우리를 괴롭힐 것이 남아 있지 않게 하거나 더는 치명적이거나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리는 극장에서 주인공들의 불행을 경험하면서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연민을 정화한다. 허구인 까닭에 그들의 불행은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침울하게 만들지 않는다. 

- p. 163~164


책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읽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단순히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작품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다. 

- p. 173


실상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권태로워야만 굳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 책을 펼치는 굴욕을 맛본다. 책에 담긴 생각에 자족하고, 다른 것들과 매한가지로 이 생각 또한 가치 있으리라 여기게 된다. 독서란 권태로움이 자기애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는 행위다. 

- p. 179


독서에서 적이란 인생 그 자체다. 삶은 책을 읽기에 알맞지 않다. 인생이 관조나 성찰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야심, 사랑, 탐욕, 증오, 개중에서도 특히 정치적 증오, 질투, 경쟁, 각각의 분쟁, 이 모든 것이 삶을 뒤흔들고 폭력적으로 만들며, 미지의 무언가를 읽을 생각에서 멀어지게 한다. 

-p. 180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 p. 202


비평가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문학사가와는 반대로 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이며 그 생각은 원칙이나 감정으로 이루어졌기 마련이다. 그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여행하기 위한 지도가 아닌 여행에서 얻은 인상이다. 

- p.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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