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그곳

지난 10월 25일.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허지웅과 함께하는 씨네21 토크콘서트 <바닷마을 다이어리>' 행사를 찾았다. 이번 행사는 허지웅 작가(평론가)와 주성철 씨네21 편집장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배경이 된 장소들을 찾은 여행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진행 방식은, 여행기 영상과 함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이해와 감수성을 북돋워주기 위한 편집 영상을 감상한 후 그에 대한 여행기를 풀어놓는 방식이었다. 특히, OST 편집 영상을 감상할 땐 '아! 영화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좋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지역은 '동쪽의 교토'라 불리는 가마쿠라와 에노시마섬 일대다. 도쿄에서 약 한 시간 거리밖에 되지 않아, 관광지로도 훌륭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곳.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허지웅과 주성철이 찾은 때가 공휴일인 '노인의 날'이었던 터라, 이동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다시 감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혈팬인 나는, 이 영화의 재감상을 통해 다시금 감독의 감수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말은 허지웅, 주성철도 꺼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삶을 의미있게, 소중하게 대하며 살아가는 사람 같다고 말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네 자매에 대한 이야기다. 세 자매가 함께 살다, 그녀들의 의붓 여동생 한 명이 함께 살게 된 상황. 아무리 가까이 지내려 해도, 의붓 자매라는 것 때문에 미묘한 이질감, 생경함 따위가 생기게 마련이다. 영화는 이들 자매들이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데 능통하다. 허지웅이 말했듯, 영화는 공동 작업인 동시에 감독 개인의 작품이라 불릴만큼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결과물로 볼 수 있는데, 고레에다 리로카즈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사람들, 즉 관객들이 십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잘 펼쳐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설정이 비록 보편적인 상황들은 아니지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는 면에서 보면 관객들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한적한 바닷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인만큼, 소박하고 순정 가득한 작품이다. 착한 네 자매의 내면처럼, 그녀들을 둘러싼 집, 동네 풍경도 감성적이다. 허지웅의 여행기가 담긴 씨네21 10월호 매거진을 보면, '분사 식당'의 잔멸치 덮밥(시라스동)을 강력 추천해둔 점을 알 수 있다. 행사 현장에서도 그의 잔멸치 덮밥 예찬이 가장 선명하게 각인됐을 정도다.



영화 속 '우미네코 식당'과 '아마네코테이 카페'



분사 식당은, 영화 속 인물들이 전갱어 튀김을 먹으러 즐겨찾은 곳이다. 영화에서는 '우미네코 식당'이라는 상호로 등장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식당 내에서 전갱이 튀김이 부각된다. 잔멸치 덮밥은, 가마쿠라가 잔멸치로 유명한 탓인지 자매들의 집에서 자매들이 요리해 먹는 장면으로 등장한다.



잔멸치 덮밥을 먹고 있는 스즈



허지웅과 일행은, 분사 식당에서 잔멸치 덮밥과 머릿수에 맞춰 라멘 한 접시씩을 주문했다고 한다. 사실, 밥 위에 잔멸치를 덮은 것이 별다를 게 있겠냐, 라고 생각하며 적게 주문했는데 한 입 먹고 한 입 더 먹는 순간 '덮밥의 이데아'를 경험했다고 허지웅은 말했다. 오히려, 라멘은 너무 짰다고 고백했는데, 그 수준이 '일본에 있는 모든 소금들을 끌어모아 넣은 것 같았다'고.

허지웅이 묘사한 분사 식당의 잔멸치 덮밥은, 너무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잔멸치와 밥알의 찰기가 온전한 조화를 이뤘다고 한다. 특히, 적당한 간이 좋았다고. 잔멸치 덮밥! 정말 경험해보고 싶은 메뉴다.
"이것은 건프라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밥알과 멸치라는 파트로 이루어진 건프라인 것이다. 그리고 내 입안에서 기분 좋게 짭조름한 데칼과 만나 완성되고 있다. (씨네21 매거진 10월호)"





한편, 영화 속 '우미네코 식당'을 운영하는 남편이 운영하는 '아마네코테이'라는 카페에도 방문했다고 하는데 그곳의 실제 이름은 'Beach Muffin'카페라고 한다. 막내 스즈와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잔멸치 토스트'를 판매하던 곳이다.

이렇게 '맛집' 투어를 마친 후,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거닐던 장소 투어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둘째 요시노와 막내 스즈가 아침 출근 및 등교를 위해 에노덴을 타러 급히 향했던 코쿠라쿠지역. 스즈가 소나기를 피했던 빨간 지붕의 동네 정자. 그리고, 사치와 스즈가 힘겹게 올라가 정상에서 뷰를 내려다보던 기누바리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빨간 지붕의 정자에서 소나기를 피하는 스즈



특히, 기누바리산 정상에 대한 허지웅, 주성철의 예찬이 인상적이었다. 허지웅이 가장 기대했던 곳이라는 기누바리산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들 중 유일하게 관광지가 아닌 곳이라고 한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만큼, 길도 잘 닦여있지 않아 올라갈 때 고생깨나 했다는 후문. 영화에서는 사치와 스즈는 서로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며 더 가까워지는 곳으로 등장한다. 허지웅의 말로는, 이 길을 오르는 데 너무 힘들기 때문에 누구라도 '함께 간다면' 서로 얼싸안고 화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그 역시, 정상에 오르니 생각이 많아졌다고 고백했다.





"해가 지기 전에 멀리 후지산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풍광을 보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 걸어 들어가야했던 곳. 전날 큰 비가 내렸기 때문에 산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길이 잘 닦여 있지 않았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벌레떼가 날아들었고 수시로 진흙에 발이 빠졌다. 수풀이 걷히자 정상이 나타났고 세상이 펼쳐졌다. 에노시마, 가마쿠라, 가나가와, 멀리 후지산이 보이고 바다와 지평선과 이제 거의 하루치 일을 끝낸 태양이 보인다. 나는 발을 뗄 수 없었다. (씨네21 매거진 10월호)"





한편, <바닷마을 다이어리> 하면 당연히 떠올리게 될 바다. 영화에 등장하는 바다는 사치가 애인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계단 신(scene)과 마지막 장면에서 자매들이 함께 걸은 '시치리가하마 해안'이라는 곳이다. 만화 <핑퐁>의 배경이기도 했는데, 허지웅은 이곳에서 <슬램덩크>의 만화 배경과 완전히 똑같은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며 놀람을 표했다.





이번 행사에서 허지웅과 주성철은, 대개 영화들 속 장소들을 실제로 찾아가보면 '영화는 영화다'라며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왜 이곳에서 촬영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헀다. 감독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랬듯, 영화 촬영지 헌팅에 있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 면면들이 보였다는 증거다.



나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혈팬으로서 그의 영화들 모두를 봐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 드라마라는 장르, 메시지 면에서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보여지는 장면들이 지닌 감수성 면에서는 여느 작품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 작품이라 여겨왔다. 주인공들이 여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녀들이 서 있는 곳들도 여성(섬세)스럽다고 여겨왔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으나, 영상들과 허지웅, 주성철의 여행기를 들었을 때도 그와 같은 감상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허지웅, 주성철의 여행기를 전해듣고 다시 본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더 좋았다. 영화 안팎 모두 서정적인 정서를 가득 들어차 있다는 것이 전하는 감동. 이 영화의 OST 음원을 구매했다. 얼마간은 이 음악들에 취해 잠들 것 같다.



일본정부관광국의 지원을 받은 포스트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나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