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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탄탄한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풍성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게 만든다. 반면, 영화의 다양한 한계 때문에 소설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옮겨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원작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좋았다. 소설 뿐만 아니라 1974년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라는 원작 영화가 있기에, 비교 대상이 많았지만 이번 작품 자체만이 지닌 매력은 다분하다.

이번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매력은 '입체적인 캐릭터'와 '화려한 영상미'다. 명탐정 '포아로'가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보여주는 스토리는 원작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확실히 '현대미'를 갖추고 있다.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총출동만으로도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았을 이 영화. 실제로, 관람하면서도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들을 만날 때처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배우들이 열연한 입체적인 캐릭터들은 원작들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고, 그들이 펼치는 만담은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단, 영화를 보기로 다짐한 관객이라면 '캐릭터에 집중할 것을 각오'하고 영화관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캐릭터가 너무 많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



추리극임에도 불구하고 '미학적'인 이 영화는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설원 위를 거세게 횡단하는 열차 안팎을 묘사한 장면들은 남다른 스케일을 뽐낸다. 한편, 인물들의 일그러진 내면을 표현하는 데 적극 활용된 분열된 유리창들은 심리 묘사 뿐 아니라 주제 의식을 은유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갇힌 공간과 한정된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추리극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관객들을 추리에 참여시킴으로써 능동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고 탐정이 용의자들을 한 명씩 심문해나간다는 서사는 정통 추리극의 색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추리 과정은 비뚤어지고 기울어진 것, 흠집 하나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한 이성주의자 포와로가 관념적이고 감정적인 것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그의 만능 지팡이, 흐트러짐 없는 콧수염 등의 유물적인 것들이 자기 희생, 용서 등의 관념적인 가치들로 거듭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결국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강조되는 가치는 휴머니즘이다. 그 깊은 곳에 자리잡은 가치는 사랑과 용서다. 그러나, 그 따듯한 내면을 지닌 이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한 행동을 저질렀다. 하지만 많은 이들, 즉, 관객들과 이성적인 포와르까지도 살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눈살을 찌푸릴 만한 이 사건은,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뉴스에서는 이와 비슷한 실 사례들을 여러 차례 보도해왔다. 과연 이 살인 사건은 진정으로 이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옳고 그름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행동들. 우리 역시 영화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많은 생각을 하며 관람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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