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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억의 밤> 리뷰

<기억의 밤>은 꽤 탄탄하고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자랑하는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장르색도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면은 영화 전반의 무게감이 고르지 않고 클리셰들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납치된 후 기억을 잃은 형 '유석'과 그의 잃어버린 나날을 쫓다 자신의 기억마저 의심하게 되는 동생 '진석'의 이야기. 엇갈린 기억과 현실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기억의 밤>이 지닌 큰 매력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숨김 없이' 진실을 향한 갖가지 단서(장치)들을 던져준다. 새집으로 이사가는 날 엄마의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들어올리며 잠에서 깬 진석. 새집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게' 느낀다는 진석의 독백은 영화가 밝히고자 하는 진실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진석의 독백에 의하면 이들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화목하다. 자신은 신경쇠약을 겪는 삼수생이지만, 그의 형은 다리 한 쪽을 저는 것만 빼면 빠질 것 없는 인물이며 부모 역시 나무랄 데 없다. 한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진석의 독백과는 다른 가족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가 쏟아지던 날 유석이 괴한들로부터 납치되면서부터다. 형이 사라진 후, 진석은 매일같이 악몽과 환청, 환각에 시달린다. 다행히도 유석은 19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는 그 사이의 암흑같은 기억을 스스로 지우고 만 것이다. 기억뿐 아니라, 행동도 변해버린 유석에 대해 진석은 형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의심은 형에서 그치지 않고, 부모에게까지 이어진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유석이 진짜 변한 것일까.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진석의 과도한 환청과 환각이 잘못된 것일까. 관객들은 명백하지 않은 상황들로 인해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진짜라고 주장하지만, 관객들은 진실을 도통 알 수 없다. 영화가 중반부에 이르기까지는 말이다.



진실이 밝혀지면서 영화가 초반에 배치해뒀던 장치들의 비밀도 명쾌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기억의 밤>의 시공간과 캐릭터, 사건 모두가 단일적이지 않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크고 작은 반전들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고, 캐릭터도 입체적(실제로 이중 연기를 한다)이다. 더군다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숨가쁘게 전개되는 등 속도감도 있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장르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수선하다'는 느낌도 감출 수 없다. 특히, 진실이 밝혀지는 중후반부로 향할수록 초반의 속도감과 다양한 장치들이 주는 재미를 따라가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억의 밤>은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 영화다. 좀 더 촘촘하고 세심한 스토리텔링이 가미돼 소설로 탄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을 정도로 스토리텔러 장항준 감독의 특기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한데, 영화로 표현되기에는 과도한 설정들이 존재하기도 했었고, 급진적인 전개는 개연성을 흐트린다는 느낌도 받았다. 세심한 공은 엿보이지만, 클리셰 다분한 장치들에 대한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강하늘의 연기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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